2024년 5월 15일 부활 제7주간 수요일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방금 들은 오늘 복음은 요한 복음 17장에 나오는 대사제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의 한 대목인데, 예수님께서 당신의 제자들, 특히 당신의 교회에 당부하는 기도의 지향을 잘 알려준다. 첫째, 아버지 하느님과 아들 예수님이 하나이듯, 세상의 교회에 속해 있는 모든 이들이 하나가 되도록 기도하라. 둘째, 교회에 속해 있는 모든 이들을 악에서 지켜 달라고 기도하라. 셋째, 교회에 속해 있는 모든 이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라.
개신교에서는 성인 공경의 전통이 없다.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하면서 성인 공경의 전통을 없애버렸기 때문이다. 사실 성인 공경의 전통은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는 신앙을 좀더 돈독하게 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다. 그런데, 중세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자리에 특정 성인이나 성녀를 올려 놓고, 예수님보다도 특정 성인 성녀 공경에 더 치중했었다. 주객이 전도되어 버린 것이었다. 이런 복을 주는 성인, 저런 복을 주는 성인 몇몇을 골라서 그 성인들만 편애하는 작태가 중세시대에는 널리 퍼져 있었다. 지나친 성인 공경은 신앙을 기복으로 바꾸어 버렸다. 모든 영광과 찬미와 감사를 받으셔야 할 예수 그리스도 대신에 몇몇 성인 성녀들이 그 영광과 찬미와 감사를 받았다. 지나친 성인 공경은 신자들의 신앙을 그릇된 기복으로 이끌었다. 지금 우리 시대는 지나친 성인 공경으로 말미암는 오해와 분열, 불일치의 모습은 별로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자리에 애국, 민족 같은 특정한 신념이나 단체를, 국가를 올려 놓는 경우들로 인해, 교회 안에서 오해와 분열, 불일치의 모습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우리 시대는 종교 다원화 시대다. 하나의 종교만이 절대 진리라고 말할 수가 없는 시대다. 종교 다원화 시대에 종교들은 마치 백화점의 물건들 같은 취급을 받기가 예사다. 어떤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는데 꽤 효과적인 종교라면, 쉽게 갈아타기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이미 조성되어 있다. 종교 다원화 시대의 가장 큰 문제는 혼합주의와 상대주의다. 이 종교 저 종교의 꽤 그럴싸한 가르침들을 한데 섞어 버리고, 개별 종교들의 고유한 예식들도 섞어 버리는 것을 두고, 혼합주의라고 한다. 그리고 예수님의 가르침이나, 부처님의 가르침이나 마호메트의 가르침이나 결국 똑 같은 것 아니냐는 식의 생각과 행동들을 두고 상대주의라고 한다.
이 지구 상에는 분명 전쟁이나 폭력을 더 선호하는 악이 실재하고 있으며, 그로 인한 부의 축적을 바라는 악 역시 실재한다. 빈부간의 지나친 격차에도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오히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당연한 것이라며 이를 더 부추기는 사람들이나 단체도 존재한다. 이들을 옹호하거나 이들의 논리의 근거로 삼는 사이비, 이단들도 존재한다. 이들의 특징들 중의 하나가 혼합주의와 상대주의다. 교회에 속해 있는 모든 이들을 악에서 지켜 달라고 기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교회에 속해 있는 모든 이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는 것은 교회에 속해 있는 모든 이들이 십자가의 길, 사랑의 길을 걸으며, 진리이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하고, 그 삶을 실제로 살아보려는 노력을 한다는 것을 뜻한다. 거룩함이란 속됨과 반대되는 것, 속됨에 속하지 않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다 속된 것은 아니다. 인간의 욕망이 투영된 것들 가운데 세상과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는 것들을 두고 속된 것이고 한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여러분에게 오늘 복음은 어떻게 다가오고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