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강림의 의미
오늘은 성령강림대축일입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시고 50일이 지난 후, 성령께서 사도들에게 내려오십니다.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 때에 당신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셨고, 당신 부활 이후에도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성령 강림의 의미에 대해 함께 묵상하겠습니다.
오늘 성령강림의 모습을 가장 극적으로 전해주는 것은 제1독서입니다. 오늘 독서 사도행전에 따르면, 사도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을 때 거센 바람이 불고 불꽃 모양의 혀가 사도들 위에 내려앉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사도들은 성령으로 가득차서, 성령의 능력으로 여러 민족의 언어로 말하기 시작했고, 다른 민족과 다른 지역의 사람들이 사도들의 말을 다 알아들었다고 전합니다.
오늘 독서가 전하는 바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약성경의 바벨탑 이야기를 알아야 합니다. 창세기 11장을 보면, 사람들이 자기 능력을 믿고 하늘에까지 닿는 탑을 세우고자 합니다. 인간의 교만이 하늘을 업신여긴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의 말을 뒤섞어 놓아, 서로 말을 알아듣지 못하게 만들었고, 사람들을 온 땅으로 흩어 버리셨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고대 신화의 요소를 많이 포함하고 있지만, 인간의 모습에 대한 진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예나 지금이나 참으로 교만합니다. 자기가 가진 것이 자기 노력에서 왔다고 생각하고, 자신이 이룬 일을 자신의 능력으로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인류는 자신이 이루어 놓은 엄청난 물질적 풍요를 자랑스러워하지만, 그것이 참으로 인간다운 것인지 돌아보지 않습니다. 인간이 이룬 엄청난 물질문명은 고스란히 자연과 생태의 위기로 인간에게 되돌아옵니다. 인간수명의 연장이 참으로 축복인지 재앙인지도 의문입니다. 그러기에 인간은 하느님 앞에서 겸손해야 합니다. 하느님 앞에서 겸손하지 못할 때, 우리도 역시 하늘에 이르는 탑 바벨탑을 쌓고 있는 것입니다. 바벨탑을 쌓은 인간의 교만이 인류의 언어를 갈라놓았고, 인류를 분열시켰다고 창세기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사도행전은 성령을 받은 사도들이 각자의 언어로 말하지만 모든 민족이 알아들었다고 전합니다. 바벨탑 이후 갈라진 모든 언어와 민족들이, 바벨탑 이후에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인간의 분열이 성령을 받은 사도들을 통해 다시 회복되고 있다고 사도행전은 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사도들이 성령의 능력으로 무슨 말을 했는지, 그리고 다른 민족 사람들이 무엇을 알아들었는지 입니다. 사도들이 말하고 다른 사람들이 알아들은 것은, 오늘 사도행전에 의하면, 하느님의 위업입니다.
성령께서 내려오시고 모두가 성령으로 가득차서, 하나의 언어로 한 목소리로 인간에서 이루신 하느님의 위대한 업적에 대해 말하고 듣습니다. 성령의 강림의 가장 큰 의미는 인류가 하느님 앞에서 겸손한 백성이 되게 하는 것이고, 한 목소리로 당신의 업적을 찬양하게 하는 것이며, 그래서 사도들 위에 하나의 교회를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 성령강림대축일이야말로 교회의 생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인해 마리아에게 태어났듯이, 교회는 성령으로 인해 사도들로부터 태어났습니다.
오늘 성령강림대축일을 맞아 성령께 기도드립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이웃과 하느님 앞에 쌓아 올린 교만의 탑을 허물 수 있도록 성령께 청합니다. 세상 만물을 힘과 돈의 논리로 대하는 우리의 병든 마음을 성령께서 치유해 주시기를 청합니다. 미워하고 질투하며 부러워하는 우리의 아픈 마음을 성령께서 치유해 주시기를 청합니다. 서로 갈라진 마음을 한 마음으로 한 뜻으로 일치시켜 주시기를 청합니다. 그래서 성령의 인도 안에서 우리가 하나가 되고 우리가 교회가 되며, 성령 안에서 하느님을 볼 수 있으며, 성령 안에서 희망과 구원을 볼 수 있기를 청합니다. 오늘 우리 모두의 기도를 모아, 이 미사를 정성껏 봉헌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