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가톨릭부산 2024.05.16 11:48 조회 수 : 21

호수 2813호 2024. 5. 19 
글쓴이 이영훈 신부 
인간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이영훈 알렉산델 신부
노동사목 부산본부장

 
   최근에 저는 40여 년 전 기억으로 매우 힘들었습니다. 중학생 때 기억입니다. 10살도 채 되지 않은 중증 장애를 가진 아이와 잠시 살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장애 정도가 심해서인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그리 많지 않았던 아이였습니다. 그런 아이를 어머니께서는 갓난아이를 키우듯 하루 종일 그 아이 곁에서 모든 정성을 쏟으셨습니다. 어느 날 밤 방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자그마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형!” 제가 고개를 돌렸을 때 그 아이는 제 옆에 와 있었습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순간 짜증이 났고, 어머니를 불렀습니다. 잠시 후 어머니께서 그 아이를 데리고 나가셨지만, 제 마음은 이유를 알 수 없는 미움과 짜증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밤새 그 아이가 받았을 충격과 어쩌면 이제는 하느님 곁에 있을 그 아이에 대한 미안함으로 저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미사 때 그 아이에게 용서를 그리고 하느님께는 자비를 청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날의 미안함과 후회는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제 마음에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잊고 있었고, 덮어두었던 수많은 ‘상처 주기’와 ‘후회’가 하나씩 하나씩 떠오를까 두렵기도 합니다.
 
   우리는 수많은 사람을 만납니다. 그 만남 중에 비록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부주의와 무관심 때문에 어떤 이에게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심지어 혐오와 적개심 때문에 우리는 의도적으로 누군가를 외면하고 배척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지도 인정하지도 않은 채 기억에서 지워버립니다. 그러나 그 기억은 결코 지울 수 없습니다. 하느님을 믿는 이라면 더더욱 그러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언젠가 그 기억을 다시 떠오르게 하시어 우리 스스로 바로 잡을 기회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번 경험은 하느님의 은총이었습니다. 지금도 계속 쌓여가는 ‘인간’에 대한 저의 잘못된 태도를 하느님께서 들춰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제발, 그들이 나의 아들딸 그리고 너의 형제자매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하느님의 호소를 느꼈기 때문입니다. 일터와 일상생활에서 ‘죽어간 생명’과 ‘상처 입은 그 가족의 영혼’을 가벼이 여기고, 조롱과 혐오의 언어로 비난하는 ‘죽음의 문화’에 제가 동조하고 있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번 하느님의 사랑에 감사드리며 청해 봅니다. “주님,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에 대한 저의 무관심과 나태함, 혐오와 멸시를 용서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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