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9일 부활 제6주간 목요일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현재를 지나치게 절대화시켜서 과거도, 미래도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을 보거나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답답함을 넘어서서 애처롭기까지 느껴질 때가 있다. 물론 « 지금, 여기 »는 아주 중요하다. 인생을 잘 살아가는 길들 중에 하나가 지금, 여기에 충실한 삶이다. 하지만, 현재에만 매달리면, 많은 것을 잃게 된다. 과거, 현재, 미래가 결코 단절되지 아니하고 마치 물 흐르듯이 지나가는데, 유독 현재에만 목매는 이들, 가까운 미래에 닥칠 어려움, 힘듦에 마치 죽을 듯이 신음하는 이들, 그들에게는 오늘 복음의 주님 말씀이 들릴 리 만무할 것이다.
 
오늘 복음은 주님께서 십자가 상의 죽음 전에 당신의 제자들에게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말씀하시는 대목이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미래’라는 시간에 대해 말씀하시는 주님을 만난다. 주님께서는 « 조금 있으면 »이라는 가까운 미래와 « 조금 더 있으면 »이라는 먼 미래에 펼쳐질 일들에 대해 말씀하신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과거, 현재, 미래의 연결고리를 잘 이어가는 삶을 요구한다. 과거는 이미 지나가 버렸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으니, 현재에만 충실하자는 것이 참된 그리스도인의 자세는 아니다. 과거에 잘 된 것은 계승하고, 잘못된 것이 있다면, 반성하고, 고치려는 노력이 현재에 있어야 한다는 것은 기본 상식이다. 과거에 죄를 지었다면, 그 죄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설사 그 죄가 용서를 받았다 하더라도, 죄에 대한 벌은 남아 있는 법이다. 그런데, 지나간 과거이니, 잊고 새출발하자는 식의 태도는 지극히 비상식적인 태도다.
 
현재의 삶에 충실하지 못한 채, 장밋빛 미래만을 꿈꾸며 사는 것 또한 지극히 비상식적인 태도이다. 아무런 노력도 기울이지 않은 채, 몇 년 안에 몇 십억 벌겠다라는 말은 공허한 상상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밝은 미래를 위해 현재의 삶 속에서 노력하고 애쓰고 땀 흘리는 모습이 있어야 미래가 밝아지는 법이다. 현재를 잘 살아 간다는 것은 과거를 잘 기억하고, 밝은 미래를 희망하면서 현재의 삶에 충실하되, 현재를 절대시하지 않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다. 이것은 상식이면서 동시에 그리스도인의 영적인 태도이다.
 
오늘 주님께서는 가까운 미래에 당신과 당신의 제자들에게 닥칠 고난을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그 이후에 올 영광에 대해 이야기하셨다. 우리는 신약성경 곳곳에서, 특히 하느님 나라라는 주제와 관련해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말씀하시는 주님을 만난다. 하느님 나라에서 살고 있다는 것은 발을 디디고 서 있는 이 땅을 떠나서 어떤 낙원에서 산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신화나 전설에서나 나오는 따위의 그러한 낙원은 예수가 선포한 하느님 나라가 결코 아니다. 화려한 궁전에서, 온갖 보석들과 온갖 먹거리들로 가득 차 있는 곳, 그런 곳은 게으름뱅이들의 꿈에서나 나오는 곳일 뿐, 결코 하느님 나라가 아니다. 그러한 낙원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하느님 나라에서 살기를 희망하는 이들은 결코 허무맹랑한 것을 꿈꾸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 어느 누구보다도 더 현실적이고 실제적이다. 그러면서도 미래에 대한 낙관적인 희망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이다. 희망이라는 것은 일차적으로 사람으로 하여금 살게 하는 원천이다. 또한 희망은 예수 그리스도의 약속을 신뢰하고, 우리 자신의 힘을 믿기보다는 성령의 도움으로 하느님 나라를 갈망하게 한다.

바오로 사도는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지금의 이 은총을 누리게 되었고 또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할 희망을 안고 기뻐하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고통을 당하면서도 기뻐합니다. 고통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시련을 이겨내는 끈기를 낳고 그러한 끈기는 희망을 낳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 속에 하느님의 사랑을 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로마 5,2-5).

 
오늘 복음은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나는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기회를 가끔씩이라도 가지는 생활을 하라고 채근한다. 
 
여러분에게 오늘 복음은 어떻게 다가오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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