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6주일(나해) 강론 – 하느님 중심
주임신부 2024. 5. 5, 덕계성당
어느 자매님의 이야기로 시작하고자 합니다. 그 자매님은 사고로 남편을 잃고, 또한 사기를 당해 집까지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뒤, 본인이 아파서 병원에 갔는데 암 말기 진단까지 받게 된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들이 기도하고 있는 어머니를 향해서 울부짖으며 말합니다. - “하느님이 어머니에게 해준 것이 뭐 있다고 이렇게 기도하세요?”... 그 아들의 잣대로서는 그리 말할 만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자매님께서는 아들의 손을 꼭 잡고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남편을 잃은 것도 한스럽고, 집을 잃어버린 것도 원통하고, 이렇게 건강까지 잃어버린 것도 서러운데, 내가 하느님까지 놓치고 그래서 믿음까지 잃어버리면 뭐가 남겠니?”... 여러분께서는 이 자매님의 말씀에 대해 어떻게 느끼십니까? 제가 볼 땐, 정말 ‘대단한 믿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는 종종 무엇 무엇 때문에 하느님을 믿지 않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그 무엇들 때문에 하느님을 믿을 수 없다고 말할 것이 아니라, 하느님 때문에 그 무엇들을 극복할 수 있다는 사실은 왜 잊어버릴까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요한 15,16)라고 하십니다. 즉, ‘나 중심’이 아니라, ‘하느님 중심’인 것입니다. 그러니, 나의 필요로 내가 하느님을 선택하여 신앙을 갖게 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먼저 나를 선택하심으로써, 내가 신앙을 지니게 되었다는 것을 우리가 기억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오늘의 제2독서에서도 같은 맥락의 말씀이 나옵니다. -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다.’(1요한 4,10 참조)라고 말합니다. 즉, 하느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 이전에,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이 먼저이고, 바로 이 ‘내리 사랑’ 때문에 우리도 하느님과 이웃을 향해 사랑을 드러내어야 함을 잘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종종 착각합니다. 마치 내가 물건을 사듯 하느님을 선택한 것처럼, 그래서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나에게 생겼을 때에는 물건 돌려주듯 하느님을 믿지 않겠다고 하곤 합니다. 많은 경우, 성당에 나왔다 안 나왔다 하는 신자분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성당 다니는 신자라고 하면서 교회 자체 또는 교회 사람들이나 봉사자들에 대하여 자기 주관적 잣대로만 판단하고 표현하는 분들을 어쩌다 볼 때에도 같은 생각이 듭니다. 아마도, 이 모두가 ‘하느님 중심’ 아닌 ‘나 중심’ 때문이 아닐까요?
기쁨을 바라시는 여러분, 우리를 먼저 사랑하시고 먼저 택하신 하느님 때문에, 우리는 우리에게 닥치는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으며, 이 세상 안에서 기쁘게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당신의 친구로 대해 주시는(요한 15,14-15 참조) 예수님께서도 오늘 복음에서,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15,11)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바라건데, 우리가 ‘나 중심’보다는 점점 ‘하느님 중심’으로 거듭 변화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나의 잣대’가 올바른 객관성을 지님으로써 ‘우리의 잣대’가 되고, 나아가 ‘하느님의 잣대’와도 가까워졌으면 합니다. 그럼으로써, 우리 안에 진정한 기쁨이 지속되길 희망해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