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일 목요일 성 아타나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 하시는 말씀들 중에 특히 « 여러분은 내 사랑 안에 머무르시오 »라는 이 말씀을 우리들의 삶의 자리에서 실천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여러 가지 덕행이 있겠지만, 사제서품과 수도자의 종신 서원 때에 하는 서약과 관련해서, 청빈, 겸손, 순명이라는 3가지 덕행에 대해서 말씀 드리고 싶다.

이 3가지 덕행은 사람이 되신 하느님, 우리들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걸어가신 사랑의 길에 다름 아니다. 사실, ‘하느님이 사람이 되셨다’는 이 진리 자체가 바로 하느님의 청빈함을, 하느님의 겸손함을, 하느님의 순명을 드러낸다.

청빈, 겸손, 순명은 성직자와 수도자들의 의복에서도 잘 드러난다. 성직자들이 주로 입는 옷이 수단이다. 수단은 청빈, 겸손, 순명을 드러내는 옷이다. 까만 수단에 흰색의 로만 칼라는 청빈을 상징한다. 의복에서 가장 잘 닳는 부분이 목덜미와 소매와 수단의 끝단이다. 목덜미를 보호하기 위해서 성직자들은 광목으로 된 흰 천을 둘렀다. 그것이 바로 로만칼라의 효시이다. 그리고 소매부분도 잘 닳는 부분이다. 수단의 소매에는 얼핏 보면, 주머니처럼 사용 가능한 부분이 있는데, 이는 소매가 닳으면, 그 부분을 내려서 소매를 수선하는데 사용하기 위한 여분의 천이다. 그리고 수단의 끝단이 닳으면, 예전에는 거기에다가 레이스를 달아서 사용했다. 오늘날에는 레이스가 장식을 위해 주로 사용되지만, 사실, 레이스는 닳은 의복의 끝단을 수선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이러한 수단은 그 자체로 청빈을 드러낸다. 사실 청빈해야, 겸손할 수 있고, 겸손해야 순명 할 수 있다.

성직자와 수도자들의 의복이 청빈, 겸손, 순명을 드러낸다고 해서, 청빈, 겸손, 순명이 성직자와 수도자들만이 걸어가는 길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모든 사람들이 걸어가야 할 길이다. 그러나 청빈, 겸손, 순명은 그 자체로 목적은 아니다. 청빈, 겸손, 순명은 하느님과 하나되기 위한, 하느님 안에 머물기 위한 방편들이다.

청빈해야 겸손할 수 있고, 겸손해야 순명할 수 있다. 가진 자는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한 집착 때문에 청빈할 수 없고, 청빈하지 않으면 겸손해지지 않으며, 겸손하지 않은 자는 결코 순명할 수도 없다.

그저 고개 수그리거나 읊조리는 것은 겸손이 아니다. 겸손은 자신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거짓 없이 드러내는 것이다. 흙에서 와서 흙으로 되돌아가는 존재인 인간의 미소함, 인간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그런 자신을 꾸밈없이 하느님 앞에, 사람들 앞에 내 보이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청빈, 겸손, 순명의 삶을 마치 시대에 맞지 않는 삶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끊임없는 소비문화와 향락문화, 하느님께 삶의 가치와 기준을 두기 보다는 인간의 지식, 기술, 물질에 더 큰 가치와 기준을 두는 문화, 한마디로 생명보다는 죽음을 향해 치달아 가는 시대에서 청빈, 겸손, 순명은 참으로 어리석은 길처럼 여겨지기까지 한다. 그저 나의 복과 성공, 내 가족의 안녕과 마음의 평온을 얻으려는 기복신앙에 젖어 쉽고 넓은 길을 찾으려고 하는 어중이 떠중이 신앙인들에게도 청빈, 겸손, 순명은 고단한 길로 여겨진다.

청빈, 겸손, 순명의 길은 분명 어려운 길이다. 쉬운 길이 결코 아니다. 그러나 청빈하고, 겸손하고, 순명 할 때에, 예수님처럼, 세례자 요한처럼, 그분들의 삶을 본받으려 했던 수많은 성인성녀들처럼, 불의를 거부하고, 정의를 추구하며,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손을 잡아주고,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며, 더불어 함께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길, 하늘의 길을 걷게 된다.

이런 말들을 하면서 입으로만, 말로만 청빈, 겸손, 순명 하자는 내 자신을 반성해 본다. 부끄러워진다. 하지만, 이 부끄러움이 바로 나의 한 모습임을 인정하는 것, 내가 끌어 안고 내가 다독거려야 하는 것, 그리고 하느님께 봉헌해야 하는 것으로 받아 들이고자 한다.
오늘 복음은 나에게 이렇게 다가 온다.

여러분에게는 어떻게 다가오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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