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30일 부활 제5주간 화요일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성경이 말하는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나 풍요로운 행복의 상태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평화는 하느님께서 창조하시는 것이요, 하느님께서 주시는 은총이다. 성경에는 하느님께서 당신 겨레의 평화를 원하시고 이스라엘을 축복하신다는 내용의 이야기들이 줄곧 나온다. 그리고 평화를 위한 기도는 정의의 실천으로 이어지고,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지키고자 하는 노력은 평화를 지키기 위한 투쟁과 동일하다는 이야기도 줄곧 나온다. 이러한 사실은 사이비 예언자들에 대항하여 싸우는 예언자들의 투쟁을 통해서도 확인될 뿐만 아니라, 평화를 하느님께서 주시는 정의의 열매로 이해하기보다는 오히려 정치적인 조약이나 동맹의 결과로 이해하려는 왕들의 유혹에 대항해서 싸우는 예언자들의 투쟁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성경이 평화를 말할 때에는 항상 정의를 염두에 둔다. “정의가 꽃피는 그의 날에 저 달이 다 닳도록 평화 넘치리라.”(시편 72,7) 정의와 평화! 하느님을 따르고자 길을 나선 백성들에게 새로이 주어진 희망의 지평은 바로 강물처럼 흐르는 정의(아모 5,24)와 평화가 흘러 넘치는(이사 48,18) 세상에 대한 갈증이었다. 정의롭고 싶으나 정의롭지 못하고, 평화롭고 싶으나 평화롭지 못한 이 세상과 나 자신에 대한 끝없는 고민은 하느님과 함께 ‘동행’함을 체험하는 이 교회라는 도구를 통해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다.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는 이 땅 위에 정의와 평화가 흘러 넘치는 하느님 나라 건설을 위함이다. 그래서, 그 교회가 제대로 된 교회인가, 그렇지 않은 교회인가를 구분하는 잣대는 이 물음에 어떻게 답하느냐에 달려있다: « 세상을 향한 정의로움과 평화를 향한 외침 앞에 지금 우리는 충실한가?:
우리들의 주님, 우리들의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노래인 시편은 정의와 평화에 대해 이렇게 노래한다. ‘정의가 당신 앞을 걸어 나가고, 평화가 그 발자취를 따라 가리라.’(시편 85,13) 평화가 오려면, 먼저 정의가 서야 한다고 노래한다. 정의가 무엇일까? 옳고 그름만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만은 아니다. 평화를 구하는 기도는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한 영감을 준다.
주님, 저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증오가 있는 곳에 사랑을
싸움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의심이 있는 곳에 신앙을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두움이 있는 곳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
오 주님, 제가 위로받기 보다는 위로하고
이해 받기 보다는 이해하며
사랑 받기 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자기를 내어 줌으로써 받고
자기를 잊어버림으로써 자기를 찾게 되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부활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기 때문이옵니다
증오가 있는 곳에 사랑을
싸움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의심이 있는 곳에 신앙을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두움이 있는 곳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
오 주님, 제가 위로받기 보다는 위로하고
이해 받기 보다는 이해하며
사랑 받기 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자기를 내어 줌으로써 받고
자기를 잊어버림으로써 자기를 찾게 되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부활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기 때문이옵니다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가지고 오는 것이 정의이고 평화다.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가지고 오는 것이 정의이고 평화다.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가지고 오는 것이 정의이고 평화다. 의혹이 있는 곳에 신앙을 가지고 오는 것이 정의이고 평화다.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가지고 오는 것이 정의이고 평화다.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 오는 것이 정의이고 평화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정의와 평화는 어떤 상태를 의미하는 형용사가 아니라, 동사다. 이 정의와 평화는 거창한 것이 아니라, 내 삶의 자리에서 얼마든지 실천 가능한 것이다. 천주교 정의 구현 사제단(정구사) 신부들이나, 천주교 정의평화 위원회(정평위) 위원들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오늘 주님은 우리에게 당신의 평화를 주겠다고 말씀하셨다.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삶 자체가 우리에게 평화를 가져다 준다.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삶 자체가 주님의 일을 하는 것이고,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는 평화와 정의에서 그리 멀리 있지 않다.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오늘 복음은 나에게 내 삶의 자리가 바로 정의와 평화를 일구어 내는 자리, 꽃자리라고 가르친다.
여러분에게 오늘 복음은 어떻게 다가오고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