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 부활 제4주간 금요일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내가 살던 고향집에서 밀양성당은 겨우 200-300미터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덕분에, 대여섯살 때부터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나는 할머니 손을 잡고 매일 평일미사에 참례했다. 그 시절, 평일미사는 수요일에만 저녁에 있었고, 나머지 월요일부터 금요일 아침까지는 아침 6시에 있었다. 내 어린 시절에 본당 신부님들로 배상섭 신부님, 돌아가신 정인식 신부님, 자연인으로 돌아간 장병진 신부님, 돌아가신 김태호 신부님들이 계셨다. 그 신부님들의 강론들은 40년도 더 되었으니 거의 대부분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것은 그 신부님들의 성품 정도다.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제자들의 기억들도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문득 나의 뇌리를 스쳐 지나간다. 사실 신약성경의 4복음서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고 있던 제자들의 메모리 창고다. 예수님을 처음 만났던 순간부터, 부활, 승천을 모두 경험했던 제자들의 기억들이 저장되어 있는 하드 디스크다. 그 하드 디스크의 한 부분, 한 부분을 우리는 매일 복음으로 읽고 있다.
오늘 복음은 제자들이 들었던 스승의 말씀들 가운데, 당신의 신원, 당신의 정체에 대한 말씀 부분을 우리들에게 들려준다. 스승께서는 «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오 »라고 당신 스스로를 밝혀 보이신다. 아버지 하느님께로 가는 길, 아버지 하느님을 드러내 보이는 진리, 아버지 하느님께서 주시는 생명이 바로 다름 아닌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스스로 밝히신다.
이 말씀을 기억하고 있던 제자들은 오순절에 성령을 받고, 그날부터 자신들의 스승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선포하기 시작한다. 그 선포는 제자들의 내면 속에 잠재되어 있던 기억들을 꺼내었던 것들이었다. 그들의 스승이 자신들에게 해주었던 말씀들, 표정들, 미소들, 행동들, 그 모든 것들이 새록새록 일어 났고, 그 기억들이 복음이었음을, 예수님의 함께하심이 바로 복음이었음을 그들은 깨닫게 되었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과 3년을 동고동락하던 제자들이 부러운가 ? 그들은 예수님을 직접 만나 뵈었고, 그분과 함께 빵을 나누고, 그분과 함께 대화도 나누고, 그분과 함께 삶을 공유했으니, 그들이 부러운가? 인간적인 면에서만 본다면 제자들이 부럽기 한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성체가 있다. 제자들의 기억들의 보고인 성경이 있다. 그리고 2천년 역사 동안 교회 안에 고스란히 내려오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던 사람들에 대한 기억이 있다. 그리고 또 우리에게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며 살아가는 동시대인들, 나와 함께 미사에 참례하고 있는 도반이 있다.
직접 예수님을 만나 뵈옵지 못했다 하더라도, 우리네 삶 속에서 우리들이 경험했던 따스함에 대한 기억들, 사랑에 대한 기억들, 그런 기억들은 우리들로 하여금 하느님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이끄는, 마치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들이다. 그리고 우리가 듣고 읽는 성경의 말씀들은 제자들의 기억들이고, 예수님을 체험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기억들이기에, 성경의 말씀들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하는 성사로서 현시대의 우리들을 위해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매일 받아 모시는 성체는 바로 그 예수 그리스도의 몸뚱아리다.
그 몸을 우리들의 손으로 느끼고, 그 몸을 우리들의 혀로 맛보고, 그 몸을 우리들의 몸뚱아리 안으로 소화시키면서 우리는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늘 만나고, 늘 그분과 함께 하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이 하느님께서 우리들에게 베푸시는 은총이다. 당신께서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시다는 표징이다. 이 표징을 우리가 알아 듣고 깨달을 때에, 우리들도 제자들의 기억 속에서 펄펄 살아 뛰는 말씀, «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오 », 이 말씀을 받아들여, « 주님, 당신이야말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선포는 그저 말로 끝나지 아니한다.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야 말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면, 그 분의 일을 하고, 그분의 길을 걸음으로써, 그 선포는 완성된다. 오늘 복음은 나에게 선포와 실천, 이 둘은 결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에 놓여 있음을 늘 기억하라 한다.
여러분에게 오늘 복음은 어떻게 다가오고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