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1일 부활 제4주일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오늘 부활 제 4주일은 성소, 특히 사제성소와 수도성소를 위해 기도하는 날, 착한 목자 주일이라고도 불리는 성소주일이다. 예수 그리스도처럼 양떼를 사랑하여 당신 목숨까지도 내어 놓을 수 있는 ‘착한 목자들’을 이 세상에 많이 보내 주십사고 하느님께 기도 드리는 날이다.
 
오늘 복음은 교회의 목자들만을 대상으로 한 말씀이 아니라, ‘그리스도 신앙인’ 전체를 염두에 둔 말씀이다. ‘착한 목자’에 관한 오늘 복음의 말씀을 들을 때마다 ‘교회의 목자들’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복음 말씀의 원래의 뜻을 가릴 우려가 있다. 오늘 복음의 초점은 ‘착한 목자로 살아가야 할 성직자들’이 아니라, « 착한 목자이신 주님 »을 향해 있다. 오늘 복음이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는 주님이야말로 우리 모두의 착한 목자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목숨까지 내어 주시며 우리를 사랑해주시는 분이라는 것, 그분은 우리가 약해서 비틀거릴 때, 우리를 찾아와 일으켜 세워 주시고, 우리가 방황할 때 우리를 찾아 나서시며, 우리가 위험에 빠질 때 우리를 구원하러 오시는 분이시라는 것이다.

그리스도 신자라면 누구나 어떤 직분에 있거나 언제나 ‘주님의 제자’이며, ‘주님의 양’이다.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주님을 우리의 ‘스승’이요 ‘착한 목자’로 모시고, 늘 그분으로부터 겸손하게 배우고, 그분의 목소리를 듣고 따를 각오가 되어있는 사람이다. 이는 교회의 목자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지도자의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착한 목자’이냐 아니냐를 생각하기 전에 먼저 자신이 ‘착한 목자이신 주님’의 말씀을 잘 듣고 따르는 ‘착한 양’이냐 아니냐를 먼저 반성하라고 오늘 복음은 가르친다.

진정으로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는 사람만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신앙공동체의 참된 스승이 될 수 있을 것이며, 진정으로 주님의 소리를 알아듣고 따르는 «주님의 양 »이 될 수 있는 사람만이 주님께서 믿고 맡길 수 있는 신자 공동체의 « 착한 목자 »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는 착한 목자’라는 신앙명제는 나로 하여금 내가 과연 « 주님의 목소리 »를 제대로 알아듣고 있는지, 나는 과연 주님의 양으로서 주님께서 걸어가셨던 사랑의 길, 십자가의 길, 진리와 정의와 사랑과 평화의 길을 이 나라, 이 땅에서 제대로 걸으려 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반성하게 한다. 그런데, 주님의 목소리를 알아듣는다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 그것은 참된 목자의 소리와 거짓 삯꾼의 소리를 구별할 줄 안다는 것이다. 참된 것과 거짓된 것을 분별할 줄 안다는 것이다. 나는 과연 목자의 음성과 삯꾼의 음성을 분별하고, 목자를 따라갈 수 있을 만큼 식별력이 갖추어져 있을까? 나에게 들려오는 온갖 음성들을 들으면서 그 음성의 출처가 어디인지를 밝혀 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그 음성의 근원지를 식별해 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교회는 이러한 식별력을 영의 식별이라고 했다. 여러 가지 음성들 중에서 목자의 음성만을 따로 구분해 낼 줄 아는 것, 영을 제대로 식별해내는 것은 사랑의 문제이고, 생명의 문제이다. 예수를 향한 사랑, 세상을 향한 사랑이, 생명을 지키고, 가꾸고, 성숙하게 하는 마음이 내 안에 깊이 자리하고 있지 않으면, 나는 예수의 음성을 알아들을 수 없다. 목자의 음성을 제대로 듣고, 목자를 제대로 따라가려면, 목자가 걸어온 길, 바로 사랑의 길, 생명의 길, 불의와 악에 저항하는 길을 걸어가는 수 밖에는 달리 다른 방법은 없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예수를 목자라고 고백한다고 해서, 무조건 그분의 양떼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예수를 목자로 알아보는 것은 양의 몫이다. 그리고 그 목자를 따르는 것도 양의 몫이다. 사랑하는 양들을 위해서 자기 목숨을 내어 놓는 착한 목자와 같이, 가정에서, 일터에서, 공동체 안에서, 눈물겹고, 서럽도록 아름다운 이 나라 이 땅에서 스스로를 내어 주고 봉사하며 살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착한 목자의 음성을 제대로 듣고, 그 분의 길을 따라 살아가야 할 우리의 사명이고, 우리의 성소이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내 스스로를 내어 주며, 이웃을 살리고 섬기는 삶, 그 삶은 그리 멀리 있지 않다. « 나는 착한 목자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 »라는 이 신앙명제를 « 나는 착한 부모다. 착한 부모는 자식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 나는 착한 남편이다. 착한 남편은 아내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 나는 착한 아내다. 착한 아내는 남편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 나는 착한 이웃이다. 착한 이웃은 다른 이웃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 »라고 이해하고, 그렇게 이해한 바를 삶 속에서 실천하면 된다. 하지만, 문제는 여전히 실천이다.

나 혼자서 그 실천을 행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외롭고, 힘든 일이다.
그래서 교회가 존재한다. 같은 길을 함께 걷는다는 것, 그것이 바로 교회의 존재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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