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8일 부활 제3주간 목요일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요.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요. » 예수님의 이 말을 문자 그대로 받아 들인다면,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주님의 살을 먹어야 한다는 말이 되어 버린다. 부활, 승천하신 그 분의 몸을 어디에서 찾아 내어서 먹을 수 있겠는가? 설사 그분의 몸을 찾아 낼 수 있다 하더라도, 2천년이 훌쩍 지나버린 지금에, 전세계 가톨릭 신자수가 10억을 넘은 지가 한참인데, 몸뚱아리 하나로 10억명을 어떻게 먹일 수 있겠는가? 살 한 점 얻어 먹을 수나 있겠는가?
죄라는 죄는 다 지으며 살면서도, 성체만 받아 모시기만 하면 영원히 산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주님께서 당신을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라고, 당신이 주실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당신의 살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당신의 몸을 온전히 내어 놓을 만큼 세상을 사랑하고 있다는 말씀이고, 당신께서 그렇게 세상을 사셨듯이, 당신을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사람들, 성체를 받아 모시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당신께서 세상을 위해, 세상에 생명을 주기 위해 당신의 살을 내어 놓으셨듯이, 그렇게 살라는 말씀이다.
노자 성체라는 말을 들어 본적이 있을 것이다. 여행 갈 때에 여비가 필요하듯이, 저승길 갈 때에, 노잣돈이 필요하다는 데에서 나온 말이다. 신자들 중에는 죽기 직전에 반드시 노자 성체를 받아 모셔야만, 그 성체 덕분에 영벌을 면한다고 믿는 이들이 있다. 노자 성체를 모시지 못하고 죽으면, 연옥에서 엄청난 고생을 한다고 믿는 이들도 있다. 죽기 전까지 냉담을 하고, 수많은 죄를 지으며 살다가도, 죽기 직전 종부 성사 받고, 노자 성체를 받아 모시면, 영벌을 면할 거라고 믿는 이들도 있다. 종부 성사 받고, 노자 성체 받아 모시는 것이 무슨 천국행 티켓을 받는 것인 양 생각하는 민간 신앙의 영향 탓이다.
노자 성체를 영했다고 해서 구원을 받고, 노자 성체를 영하지 못했다고 해서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죽어서 주님을 직접 만나 뵈오면, 주님께서 « 입 벌려 봐라 » 하시겠는가? 그래서 성체가 입 안에 남아 있으면, 구원을 받고, 성체가 없으면,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인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죽기 전에 노자성체를 모신다는 것은 죽음에 이르기까지,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 안에 모시겠다는 자신의 신앙고백에 다름 아니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 나더러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갑니다 ». 아빠 하느님의 뜻, 그것은 아들 하느님께서 당신의 전 존재를 통해서 보여 주셨던 사랑의 삶이다. 사랑의 삶을 살기가 쉽지 않음을 우리는 이미 잘 안다. 그런 힘든 삶을 한번 살아 보고 싶다고 마음을 굳게 먹고, 어금니를 깨물고, 두 주먹을 불끈 쥐어 보지만, 이내 얼마 가지 않아 그 마음먹은 것들이 흐트러지는 자신을 쉽게 발견하는 우리이다. 때로는 내가 신자만 아니라면, 차라리 예수를 몰랐더라면, 하는 말들이 목젖에까지 차오름을 느끼기도 하는 우리다.
그러나, 이런 우리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되신 하느님은 몸소 허리를 굽혀 우리들의 발을 씻기셨다. 그리고 우리들에게 당신의 몸과 피까지도 내어 놓으셨다. 하느님이 밥이 되어 우리에게 먹히러 오셨다.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데, 무엇이 두렵겠는가 ? 언제나 나와 함께 하시는 주님이 계시는데, 그 주님이 나에게 성체로 오셔서 나를 먹여 살리고 있는데, 내가 주님의 빵으로서 이 세상에 먹히는데, 내가 주님의 몸이 되어 이 세상을 사랑하는데, 무슨 장애가 있겠는가? 그렇게 사랑하다가 죽으면, 예수 따라 부활한다는 데, 무어 그리 아쉬울 것이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