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6일 화요일 세월호 참사 10주기 추모 미사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본기도
하느님 아버지, 4. 16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이하여 자식을 잃은 아버지, 어머니들이 통곡하던 지난날을 되돌아보며, 돌아가신 분들과 남아 있는 분들의 여전한 고통과 슬픔을 저희가 나누고자 하오니 비극의 희생자들을 어루만져 주시고 위로하여 주소서.
돌아가신 분들과 남아 있는 분들의 소망과 염원을 저희가 잊지 않으려 하오니 모든 생명이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 한 형제, 한 몸임을 깨달아 생명 존중과 안전사회를 이루게 하소서. 앞서가는 나를 기억하고 내 뒤를 따라 행동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유언을 잊지 않으려 하오니 미사를 드리는 저희들의 마음이 매일 새로워지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10년 전 오늘부터 대략 6개월간,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자기 일처럼 슬퍼했다. 2014년 11월 진상규명 특별법이 통과될 때까지 총 650만명이 서명운동에 동참했다. 그 6개월간의 때는 ‘잊지 않을게/ 가만히 있지 않을게/ 끝까지 함께 할게/ 이것이 나라냐.’ 목이 터져라 외치며, 함께 살아가는 이 세상을 성찰하기 시작하던 때였다. 또한 잃어버린 공감능력을 찾아가던 때요, 대한민국의 고만고만한 국민들 모두가 운 좋게 살아남은 ‘세월호 생존자’라는 자각이 일어나던 때이기도 했다. 유가족들은 광화문광장에 농성장을 차렸고, 유가족 중의 한 분이었던 김영오 씨는 46일간 단식기도를 했으며, 시민들은 노란리본공작소를 차리기도 했다.
2014년 8월,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을 찾았고, 세월호의 유가족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주었으며, 전국이 세월호로 하나가 된 순간을 맞이하기도 했다. 정치권에서도 여야 할 것 없이 노란 리본을 달고 애도에 동참했다.
우여곡절 끝에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구성됐지만 2014년 박근혜 정부의 방해로 조사활동은 가로막혔다. 분노한 유가족은 집단으로 삭발을 하기도 했고, 경기도 안산에서 광화문까지 행진도 했다. 정부가 약속했던 세월호 인양은 차일피일 미뤄지기만 했다.
2016년 하반기로 들어서면서,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이 드러나기 시작했고, 서울 광화문 광장은 촛불로 뒤덮였다. 행진의 맨 앞에는 늘 세월호 유가족이 있었다. 마침내 시민의 힘으로 부정한 권력을 끌어내렸다. 촛불혁명으로 박근혜는 권좌에서 끌려 내려오고 세월호는 인양되어 뭍으로 올라왔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전국민의 분노는 탄핵촛불을 이끄는 중요한 동력이었다.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가 박근혜의 파면을 선고했다. « 주문 :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 같은 날, 문재인은 팽목항을 찾아와 « 얘들아, 너희들이 촛불광장의 별빛이었다. 너희들의 혼이 천만 촛불이 되었다. 미안하다. 고맙다 »고 적었다. 3월 31일, 박근혜가 구속되는 날 세월호가 목포신항에 도착했다. 그리고 5월 10일, 촛불정부를 자처하는 문재인정부 등장. 세월호참사 3년 뒤의 일이었다.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가 출범했다. 가습기살균제참사와 함께 세월호참사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3년반 활동을 전개했다. 이 과정에서 문재인정부는 진상규명을 사회적참사 특별 조사 위원회에 맡겨두었을 뿐 적극적인 노력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검찰총장으로 임명한 윤석열은 검찰 내 세월호참사특별수사단과 특검의 조사활동을 적극 방해했다. 적폐청산은 물 건너갔고 여당인 민주당의 주요 의제에서 세월호참사 진상규명은 차츰 희미해졌다.
마침내 2022년 5월 윤석열 정부가 탄생했다. 사회적참사 특별조사 위원회의 권고사항은 외면당했고, 그나마 기소되었던 관련자들마저 무죄로 석방되거나 대통령사면으로 풀려났다. 안산에 예정된 생명안전공원 건립은 지연되었고 4.16재단에 대한 예산 지원은 삭감되었다. 세월호 참사의 뼈아픈 교훈을 망각하고 형식적인 안전조차 뒷전으로 밀려났을 때, 거짓말처럼 10.29이태원참사가 발생했다. 직전인 2022년 여름 반지하 침수사고가 일어났고, 이듬해인 2023년 7월 15일 오송 지하차도에서도 새로운 양상의 재난참사가 일어났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태원참사 특별법 제정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자식이나 부모를 잃은 유가족, 실종자 가족, 생존자들의 시간은 ‘2014년 4월 16일’에 멈춰 있다. 그렇다고 망연자실, 손을 놓고 원망과 탄식으로 세월을 보낸 것은 아니었다. 세월호참사 피해자들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요구를 넘어 세월호참사로 확인된 우리 사회의 야만성을 극복하고, 모두의 생명이 존중받는 안전사회로 나아가는 노력을 펼쳤다. 이름 하여 4.16운동이다.
유가족들은 수동적인 피해자의 위치에 머물지 않고 스스로 운동의 주체가 되어 움직였다. 다수 세월호참사 유가족들이 국가 보상을 거부하고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벌여서 국가 책임을 인정받았다. 그 배상금을 출연하여 4.16재단을 만들었다. 시민들과 함께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운동을 벌여 세 차례의 관련 특별법을 만들었고, 해당 특별법에 따른 조사 기구를 구성해서 활동하도록 만들었다. 그럼으로써 재난이 일어나면 흔히 정부가 유족들을 회유하고/ 적당한 보상을 약속하고/ 동시에 피해자들을 갈라치기를 하고, 그래서 서둘러 장례를 치를 것을 종용함으로써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흐지부지 만들어버리는 종래의 악질적 고질적 프로세스를 무너뜨렸다. 그 덕분에 이태원참사 피해자들도 보상보다 ‘진상규명-책임자처벌’이 먼저라는 새로운 공식에 따라 움직일 수 있었다.
4.16운동은 기억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참사 초기부터 기록 작업을 병행하여 수많은 기록물들을 탄생시켰다. 아직 착공식도 못했지만 안산시민들이 즐겨 찾는 화랑유원지에 참사의 교훈을 일깨우는 생명안전공원이 세워지게 된다. 아울러 세월호 선체를 보존하고 활용하는 방안도 확정되어 추진 중이다. 참사의 흔적과 기억일 지워왔던 과거의 시간을 훌쩍 넘어서는 일들이 생겨나고 있다.
그뿐이 아니다. 4.16운동은 ‘피해자의 권리’를 말하기 위해 ‘4.16인권선언’을 만들었다. 이 선언이 <피해자 권리 매뉴얼>(4.16재단 2021)을 낳았고,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운동으로 이어졌다. 세월호참사로 우리 사회가 얼마나 끔찍한 위험사회인지 확인되었고 이를 넘어서기 위한 노력이 느리지만 또박또박 결실을 향해 나아가는 중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세월호참사 피해자들은 다른 재난참사 피해자들과 연결망을 형성하고 공동으로 활동해 나가기로 했다. 작년 11월에는 삼풍백화점 붕괴(1995),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1999), 인천 인현동 화재(1999), 대구 지하철 화재(2003), 가습기살균제 사건(2011), 공주사대부고 병영체험학습참사(2013), 스텔라데이지호 침몰(2017) 피해자들이 세월호참사 피해자들과 함께 모여서 ‘재난참사피해자연대’를 구성했다. 그리고 이들을 지원하는 ‘4.16재단 부설 재난피해자권리센터’가 만들어졌다.
4.16운동의 한 축이 진상규명-책임자 처벌이라면 다른 한 축은 생명존중-안전사회이다. 2021년에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되었는데 이는 세월호참사 이후 진행된 생명존중-안전사회 운동이 밑받침된 결과다. 50여년 만에 <산업안전보건법>이 제정될 수 있었던 것도 마찬가지다. 안전권에 대한 사회 전반의 인식이 높아지면서 산업재해와 사회적 재난, 자연 재난을 따로 생각하지 않게 되었고 예전 같으면 쉽게 묻혀버릴 수도 있었을 죽음들이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이제 우리 자신들에게 물어보자. 10년 전 가라앉는 배를 슬픔과 분노로 지켜봐야 했던 그때로부터 우리는 얼마나 멀리 와 있을까? 가라앉는 세월호에서 지금도 내리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이대로 가다가는 모두가 살아남지 못할 것임을 알면서도 이만한 방주가 또 있으랴 하면서 함께 침몰하는 것은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아직 세월호 안에서 친구에게 구명조끼를 양보하느라 끝내 구조되지 못한 이들에게 다른 세상의 가능성을 보여주지 못했다. 10년 전 4월, 함께 아파하고, 약속하고, 다짐했던 그 때를 돌아보자. 오늘도 세월호는 우리에게 묻는다. 어떻게 살 것인가?
기도하자. 자신의 안락만 보호하려는, 이웃의 고통에 무감각하게 만드는 헤로데의 통치, 죽음의 문화를 걷어치우게 해달라고 기도하자! 여기저기 곰팡이처럼 흉하게 번지는 무관심을 슬퍼하고, 오늘의 비극을 그저 덮고 감추려는 야만을 슬퍼하자! « 하느님은 우리에게 우는 힘을 주셨으니/ 우리가 받은 은총은 울어주는 사랑밖에 없으니/ 우는 이와 같이 울어주자/ 우리 울음이 끝이 없어야 우리들 사랑도 끝이 없고 » (박노해의 시 ‘우는 능력’에서 따옴), 그래야만 무너졌던 둑이 다시 살아난다.
+ 주님, 10년 전 너무나 슬프게 숨진 304명과 여전히 악몽에서 벗어날 길 없는 유가족들, 그리고 살아남았어도 여전히 고통스러운 생존자들과 그 가족들을 돌보아주소서! 어리석고 겁이 많은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