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4일 부활 제3주일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봄이 성큼 우리 곁으로 완연히 다가왔다. 거의 절대다수의 사람들이 입은 옷들이 가볍다. 사방팔방에는 연두빛의 나뭇잎들이 바람에 산들산들 거리는 모양새를 뽐낸다. 2015년 4월부터 해마다 4월 16일 이맘때가 되면, 내가 가장 많이 읽는 시 하나를 소개하면서 강론을
시작하고자 한다. 조향미 라는 시인이 쓴 « 상림의 봄 »이라는 시다.

 
 
상림의 봄
                                                                                                                   조향미
 
함양 상림을 지날 때는 언제나 겨울
잿빛 가지들만 보고 지나쳤다

그 오랜 숲은 지치고 우울해 보였다

길가 벚나무들 방글방글 꽃피울 때도
숲은 멀뚱하니 바라만 보았다

또 봄이야 우린 이제 지겨워
늙은 나무들은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

보름 만에 다시 상림을 지났다
아니, 지나지 못하고 거기 우뚝 섰다

아, 천년 묵은 그 숲이 첫날처럼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시커먼 고목 어디에서 그렇게 연한 피를 숨겼는지
병아리 부리 같은 새잎들이 뾰족뾰족 각질을 뚫고 나왔다

작은 물방울 같은 것이 톡톡 터지는 소리도 들렸다
온 숲에서 달콤한, 솜털 뽀얀 아가 냄새가 났다

봄바람은 요람인 듯 가지를 흔들고
새잎 아가들은 연한 입술로 옹알이를 한다

그만 모든 것 내던지고 싶은 이 만신창이 별에서
숲은 무슨 배짱인지 또 거뜬히 봄을 시작한다
참, 환장할 일이다

 
이 시의 마지막 구절, « 그만 모든 것 내던지고 싶은 이 만신창이 별에서 숲은 무슨 배짱인지 또 거뜬히 봄을 시작한다. 참, 환장할 일이다 », 이 구절이 너무나도 내 가슴에 확 들어와 박힌다.

다시 또 봄이 왔고, 내일 모레 2024년 4월 16일은 세월호 대참사 10주기다. « 상림의 봄 » 시의 마지막 구절처럼, « 참, 환장할 일 »이다. 세월호 대참사는 완결형이 아니라,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세월호 대참사가 일어나고, 많은 사람들은 « 잊지 않겠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 »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그러나 어떻게 진상 규명할지, 어떻게 책임자 처벌할지, 어떻게 세월호 인양할지를 얘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하나같이 다 하는 얘기는 추모와 기억뿐이었다. 종교인들 대부분도 « 함께 아파합니다. 회개하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라는 말, 말, 말 뿐이었다. 게다가 몇몇 종교인들은 세월호 대참사의 희생자들을 두고, « 희생양 »이라는 단어를 써대기도 했다. 안전 불감증으로부터의 회개, 적당주의로부터의 회개, 물질만능주의로부터의 회개, 극단적 이기주의로부터의 회개를 촉구하는 희생양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 희생양 »이라는 단어가 종교계에서부터 나오면, 종교는 권력의 시녀, 아니 권력의 개노릇을 자처하는 꼴이 되고, 국민의 생명을 지켜야 하는 정부의 책임, 특히 책임자에 대한 엄벌은 물 건너가게 되고, 책임자들은 결국 면죄부를 받게 됨을 적어도 이 땅의 모든 국민들은 지난 10년간 반강제적으로 학습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오늘 복음이 읽혀지고 있다. 오늘 복음에서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라고 제자들에게 인사하신다. 그런데 이 인사말이 2024년 대한민국에서는 «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고 있습니까 ? »라는 너무나도 무거운 질문으로 다가온다 : 대한민국은 평안한가 ? 대한민국에 평화가 있는가 ? 라고 말이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부활은 예수께서 십자가 상에서 «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타니 ? »라고 울부짖던 그 물음에 대한 하느님의 응답이다. 하느님은 예수님을 다시 일으켜 세우심으로써, 죽음에 저항하고 항거하셨다. 그래서 부활은 진리와 사랑의 힘이 죽음보다 강하다는 것, 사랑과 진리의 생명은 죽지 않고 영원하다는 것을 드러내는 사건이다.

이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죽음으로 점철되는 문화 속에서도 생명을 부르짖고, 잊어 버리고 가슴에 묻어 버리자는 달콤한 유혹에 온몸으로 저항하는 것이다. 죽음으로 점철되는 문화 풍토에 저항한다는 것은 선택의 기로에서 늘 생명 편에 선다는 것이다. 편리보다는 불편함을 선택하고, 몇몇 사람들의 독식보다는 많은 사람들의 넉넉함을 위하는 선택을 하는 삶이다. 또한 미래세대를 위해 더 이상 지구의 생태환경을 어지럽히지 않으려는 삶이기도 하다. 분명 이러한 일들은 피곤한 일이고, 두려운 일들이다. 하지만, 늘 우리와 함께 동행하시는 예수님, «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 덕분에 우리는 그 피곤함을 이겨 낼 수 있고, 그 두려움을 이겨 낼 수 있다.

오늘 복음의 마지막 구절, « 여러분은 이 일의 증인입니다 »은 나에게 이렇게 다가온다 : « 안드레아, 너는 죽음과 부활의 빠스카의 증인이다. 나는 너에게 증인으로서 살 수 있는 생명을 주었고, 은총을 주었다. 너와 함께 살고 있는 이들, 그들에게도 생명을 주었고, 은총을 주었다. 이제, 너는 그들과 함께 증인다운 삶을 살기를 바란다».

우리 함께 주님의 이 바램에 동참하시지 않으시겠는가 ?
죽음과 부활의 빠스카의 길을 우리 모두 함께 걸어보지 않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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