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7일 부활 제2주일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 사랑을 하고, 결혼을 결심할 때, 보통 제일로 치는 것이 무엇일까 ? 상대방의 돈 ?, 외모 ? 능력 ? 성격 ? 학벌 ? 집안 ? 그런 것이 아니라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돈이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낫고, 외모가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낫고, 능력이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낫다고 여긴다. 성격이 좋은 것이 성격이 모난 것보다는 낫고, 학벌이 고만고만한 것보다는 있는 게 낫고, 집안 배경이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더 낫다고 여긴다.

그러나 그보다 믿음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상대방이 교회나 성당 혹은 절에 다니느냐, 다니지 않느냐의 믿음이 아니라, 그 사람이 얼마나 믿음이 가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한 믿음, 곧 신뢰도信賴度말이다. 돈 많아 보이고, 직업도 좋아 보이고, 성격도 좋아 보이는데, 믿음이 가지 않으면, 거의 대부분 사기꾼이다. 돈은 있다가도 없어질 수도 있는 것이고, 직업이라는 것도 안정된 미래가 예상되지 않는 이 나라 이 땅에서는 이것저것 취할 수도 있고, 외모도 돈으로 뜯어 고칠 수 있다. 하지만, 한번 금이 간 믿음, 불신으로 인한 상처는 쉽게 치유가 되지 않으니, 결혼을 결심할 때에는 무엇보다도 믿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지혜로워 보인다.


사랑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이라고 말한다. 사랑의 바탕은 믿음이라는 말도 있다. 사랑에 불신이 싹트기 시작하면, 그 관계는 머지 않은 미래에 파국으로 치닫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다고 오직 사랑 하나만으로, 오직 서로에 대한 신뢰 하나만으로 결혼을 생각하기에는 이만 저만 많은 아쉬움이 남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것이 오늘날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나라 이 땅의 현 상황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이 나라 이 땅은 불신이 판을 치고 있다. 국민이 정치하는 사람들을 믿지 못하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돈 잘 버는 사람들을 그 방법의 선악을 떠나서 무조건 도둑놈이라고, 세금 포탈해먹은 작자들이라고 매도해버리기 십상인 곳도 이 나라 이 땅이다. 원산지 표기를 해놓아도 마음 놓고 음식 하나 제대로 먹기가 두렵고, 선한 마음에, 좋은 마음에 누구를 돕기라도 할라치면, ‘이러다가 낚이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불쑥 떠오르는 곳도 이 나라 이 땅이다.

이 땅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쉽게 믿지 못하는 중병에 걸려 있다. 하도 속아서 그런지, 그냥 쉽게 믿어준다는 것이 도저히 불가능한 것처럼 여겨지는 곳이다. 눈에 보이는 것도 제대로 못 믿는데, 하물며,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의 심보를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 증거가 있어야 믿지, 믿을 만해야 믿지, 어떻게 그렇게 순진하게 믿음을 줄 수 있는가? 라고 반문하기까지 한다.

왜 이렇게 되어 버렸을까? 왜 이 땅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쉽게 믿지 못하게 되어 버렸을까? 벌써 망했어야 할 조선왕조가 20세기가 다 되도록 버텨 왔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고, 일제 36년의 식민지 생활과 잇달은 6.25의 동족상잔이 사람과 사람을 갈라 놓아버리고, 사람을 사람으로 여기지 못하고, 적으로 만들어 버렸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미군정과 유신, 그리고 그를 이은 독재체제가 이 땅의 백성들을 그렇게 만들어 버렸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경제 개발, 부강국가, 선진국가라는 미명 아래, 돈부터 벌어들이고, 돈이 모이면, 그 다음은 권력을 추구해야 하고, 권력이 손아귀에 쥐어지게 되면, 명예를 누려야 한다는 생각들이 이 땅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 되어 버렸고, 이 당연함이 결국 불신 사회를 만들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이유들에 직접적으로는 개입하지 않았으되, 그 불신을 조장하거나, 그 불신에 암묵적으로 동조했던 우리들의 무관심과 무책임, 그리고 냉소가 한 몫을 톡톡히 하고 있었음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저 남의 탓, 이 나라 이 땅의 정치인들, 지도자들의 탓만을 이야기하던 우리, 이 나라, 이 땅에 대하여 지극히 소극적이었던 우리였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나라 이 땅의 불신의 장벽은 결국 그 장벽이 ‘제 탓이요, 제 탓이요, 제 큰 탓이옵니다’ 라고 말하며, 그 불신의 장벽에 대한 책임을 지고자 하고, 그 장벽을 무너뜨리려는 마음을 먹고, 두 주먹을 불끈 쥐면서 불신에서 신뢰에로 내 삶의 태도를 바꾸어 보려는 노력을 시작함으로써, 그 장벽은 서서히 사라질 것이다. 그 노력의 시작이 바로 오늘 복음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참 행복의 길에 들어서는 첫걸음이다.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는 말씀을 전해준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다는 것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요구한다. 우리들의 삶의 태도를 바꾸게 하고, 우리들에게 정말로 삶에 있어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소중한 것을 가지기 위해서, 그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 무엇이 요구되는지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오늘 복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사람은 언제나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가 함께 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 라고 인사하셨다. 그리고 성령을 받아서 서로 용서하라고, 의심을 버리고 믿음을 가지라고 하셨다. 이는 평화가 함께 하려면, 용서가 있어야 하고, 의심이 아닌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평화는 전쟁이 없는 상태, 혹은 전쟁 후에 있는 휴전 상태가 아니다. 평화는 그저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용서가 있어야 하고, 용서가 있으려면, 정의가 제대로 서야 하며, 믿음이 있어야만 비로소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믿음, 희망, 사랑이 추구하는 것은 결국 평화다. 왜 믿는가 ? 왜 희망하는가 ? 왜 사랑하는가 ? 평화를 얻기 위해서다. 오늘 부활 제2주일, 부활하신 예수님의 «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라는 인사말은 나에게 « 믿으시오, 희망하시오, 그리고 사랑하시오. 이것이 평화에로 이르는 길입니다 »라는 말씀으로 다가온다.

 여러분에게는 이 인사말이 어떻게 다가오는가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04 2024년 4월 11일 목요일 성 스타니슬라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미사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4.05.03 3
103 2024년 4월 10일 부활 제2주간 수요일 미사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4.05.03 4
102 2024년 4월 9일 부활 제2주간 화요일 미사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4.05.03 1
101 2024년 4월 8일 월요일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 미사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4.05.03 2
» 2024년 4월 7일 부활 제2주일 미사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4.05.03 2
99 2024년 4월 6일 토요일 성모 신심 미사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4.05.03 9
98 2024년 4월 5일 부활 8일 축제 금요일 미사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4.05.03 2
97 2024년 4월 4일 부활 8일 축제 목요일 미사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4.05.03 3
96 2024년 4월 1일 부활 8일 축제 월요일 미사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4.05.03 3
95 2024년 3월 31일 예수 부활 대축일 성야 미사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4.05.01 4
94 2024년 3월 29일 주님 수난 성 금요일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4.05.01 7
93 2024년 3월 28일 성 목요일 주님 만찬 미사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4.05.01 2
92 2024년 3월 27일 수요일 배화이 발바라 장례미사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4.05.01 13
91 2024년 3월 26일 성주간 화요일 미사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4.05.01 3
90 2024년 3월 25일 성주간 월요일 미사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4.05.01 6
89 2024년 3월 20일 사순 제5주간 수요일 미사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4.03.23 19
88 2024년 3월 19일 화요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 미사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4.03.23 16
87 2024년 3월 18일 사순 제5주간 월요일 미사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4.03.23 11
86 2024년 3월 15일 사순 제4주간 금요일 미사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4.03.23 12
85 2024년 3월 14일 사순 제4주간 목요일 미사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4.03.23 6
Board Pagination Prev 1 ...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Next
/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