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5일 부활 8일 축제 금요일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많은 동물들에게는 귀소본능이라는 것이 있다. 사람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 사람의 경우, 대개 뼈저리게 실패하고 절망하게 되면 다시금 고향 언덕을 찾게 된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예수의 제자들, 실패한 무리들도 마찬가지다. 모든 희망을 잃어 버리고 그들이 다시 찾은 곳은 다름 아닌 고향 갈릴래아, 자기네들의 스승을 만나기 전에, 먹고 살던 곳, 갈릴래아 바다 혹은 갈릴래아 호수라고 불리던 곳이었다.

추수할 것 없는 농부, 월급 못 받는 노동자도 망연자실 맥이 탁 풀릴 만큼 절망스럽지만, 고기 못 잡는 어부 역시 살맛 나지 않는 것은 매일반일 것이다. 가뜩이나 자기네 스승의 죽음으로 모든 희망 잃어버린 그들이 다시 그물을 잡게 되었지만,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바로 그 때, 제자들이 절망에 굴복해가려 할 때, 부활하신 주님께서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신다. 죽음으로 사라지지 아니하고 다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희망을 전해주시려 온전히 당신을 제자들에게 드러내신다. 그리고 오늘 복음말씀에서처럼, 그 희망의 증거를 직접적으로 보여주신다: « 그물을 배의 오른편에 던져보시오. » 밤새껏 죽어라 했을 텐데도 한 마리도 잡지 못한 그들에게 그 쪽이 아니라 반대쪽, 왼쪽이 아니라 오른쪽에 던져보라 하신다. 이제껏 죽어라 던져대던 그물의 반대방향, 이곳에 뭐가 있고, 이곳을 가야 내 일이 풀리고, 이리 보고 달려야 내가 잘 살 것만 같던 거기 말고, 거기의 반대 방향, 오른쪽에다 그물을 던져라 하신다.

살기 위해 왼쪽만 바라보던 제자들이, 제 목숨 하나 건지려고 도망치고, 스승을 배반하고, 배신하기까지 했던 제자들이 오른쪽, 이제는 주님이 시키시는 쪽에다 그물을 던진다. 그러자 그물은 끌어올릴 수 없을 만큼의 고기가 걸려든다. 이 이야기는 단지 제자들이 고기를 많이 잡았다는 기적의 이야기가 아니다. 부활하신 주님에게 물고기를 얼마 더 잡고 안 잡고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이 이야기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자 그들의 삶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드러내주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다시금 옛 삶으로 돌아갔으나 그 속에 살맛은 존재하지 않았고 밤새 헛일하는 것처럼, 밤새 삽질하는 것처럼 맥이 빠져 버린 인생들이 부활하신 그분의 음성, 곧 이제는 삶의 그물을 반대 방향으로 돌리라는 말씀을 듣고서는 살맛 나는, 신명 나는 인생으로 뒤바뀌어감을 보여주는 과정이다. 스승의 죽음으로 절망하며, 다 빠져나갔던 제자들의 생기를 채우시고, 다 잃어버렸던 사랑을 다시 채우시고 희망으로 그들을 다시 불타오르게 하시는 부활하신 주님의 이야기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왜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을 다시 갈릴래아로 보내셨을까? 당신을 처음으로 만났던 그 바닷가, 배도 버리고 심지어 아버지마저 버리고 떠났던 그곳에서 다시 그들을 “재교육”시키기 위해서가 아닐까 ? 다시 첫 마음, 다시 첫 사랑, 다시 첫 희망을 채워주시기 위해서가 아닐까 ?

제자들에게도 새로운 갈릴래아가 있듯이, 우리네 인생에도 새로운 갈릴래아가 있다. 우리가 그분을 처음으로 만났던, 고향 같은 갈릴래아. 그 갈릴래아는 우리들의 부활이 시작되는 곳이다. 그 갈릴래아가 바로 우리 김해성당이다. 바로 우리 성당이 우리들의 부활이 시작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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