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31일 예수 부활 대축일 성야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기쁜가? 정말로 기쁜가? 왜 기쁜가?

이 세 물음들은 ‘나는 부활을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있나?, 예수의 부활과 나와는 무슨 상관이 있나? 부활이 내게 뜻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물음들이다. 왜 기쁠까? 사람들이 부활이라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니까? 맛있는 고기도 마음껏 못 먹고, 때로는 단식까지도 하고, 좋은 일이라는 건 알지만, 몸이 피곤하다 혹은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망설여왔던 선행이나 자선도 다른 때보다 더 열심히 해야 하는 사순 시기가 끝났으니까, 그래서 이제 기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무덤에 묻히셨던 예수께서 다시 사흘 만에 부활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을 ‘구세주요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우리와 같은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처럼 부활할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다 주는 보증이 되기 때문에?

분명한 것은 부활은 죽고 난 후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죽음이 지배하는 듯한 이 세계가 결코 허무가 아니라 불사불멸의 영원한 가치와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믿는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온몸으로 살아 내신 그 사랑의 삶이 인간의 시기와 질투, 미움과 증오, 교만과 탐욕에 좌절될 수는 없다는 진리를 믿는다는 것이다.

예수의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나 위주로 살아 왔던 ‘나’가 죽고 이제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살고 있다는 것을 믿는다는 것이다. 사도 바오로의 고백처럼, «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갈라 2, 20)이 바로 다름 아닌 부활이다. 그래서,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소생을 믿는 게 아니라, 우리도 ‘지금’, ‘죽기 전’에 부활의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이고, 죽은 다음에 누리는 자리가 부활의 자리가 아니라, 살아서 제대로 생명을 만끽하는 자리, « 지금 여기 »가 부활의 자리다. 예수 부활의 장소는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의 무덤이 아니라, 바로 내가 예수 부활의 장소이고, 내가 살고 있는 « 지금 여기 »가 부활의 장소인 것이다.

예수 부활을 가장 잘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오늘 밤 세례를 받게 되는 신영세자들이다. 세례를 받을 때, 세례 집전자는 세례 받을 사람의 이마에 물을 붓는다. 하지만, 지금도 침례교에서는 세례 때에 몸을 온전히 담근다. 머리까지 잠길 정도로 물 안에 들어왔다가 나온다. 예수님 시대뿐만 아니라, 초대교회 때에도 세례를 받을 때에는 온 몸을 물에 담갔다가 물 밖으로 나왔다. 물에 잠기는 것은 죽음을 뜻하고, 다시 물 밖으로 나오는 것은 새로운 생명을 뜻한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부활은 죽음 다음에 이루어지는 미래가 아니라 지금 일어날 수 있고, 지금 일어나야 하는 사건이며, 나의 사건, 너의 사건, 우리들 모두의 사건이 되어야 하는 사건이다. 우리가 부활을 체험하는 길이 있다. 평화를 구하는 기도에 그 길이 아주 잘 요약되어 있다.

 
평화를 구하는 기도

주님, 저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증오가 있는 곳에 사랑을/ 싸움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의심이 있는 곳에 신앙을 /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두움이 있는 곳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

오 주님, 제가 위로 받기 보다는 위로하고/ 이해 받기 보다는 이해하며
사랑 받기 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자기를 내어 줌으로써 받고/ 자기를 잊어버림으로써 자기를 찾게 되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부활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기 때문이옵니다

 
증오가 있는 곳에 사랑을, 싸움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의심이 있는 곳에 신앙을,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두움이 있는 곳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 오는 것, 그렇게 저항하는 것, 생명의 현실적 저항, 그것이 바로 부활이며, 이 저항을 실천하는 것이 바로 부활을 체험하는 길이다.

부활은 그저 2천년 전 예수가 죽음에서 다시 살아 나왔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죽음으로 점철되는 문화 속에서도 생명을 부르짖고, 잊어 버리고 가슴에 묻어 버리자는 달콤한 유혹에 온몸으로 저항하는 것이 부활이다. 말 잘 듣고, 입 다물고 살라고 하는 세상에서 돈도 없고, 빽도 없는 서민들이 입으로라도 « 이 썩을 놈의 세상 »이라고 외치는 것, 그렇게 마음 속에 응어리 진 것을 토해 내는 것이 바로 부활을 체험하는 길이다. 밤새 모진 바람에도 벚꽃잎은 다시 땅에서 피어나듯, 이 땅의 수많은 울부짖음이 마침내 하늘을 울리고, 땅을 울려 세상을 바꿀 힘으로 바뀌는 것이 부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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