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8일 성 목요일 주님 만찬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세례를 받게 되면, 원죄가 사해지고, 축성 성유가 이마에 발리면서 그리스도의 옷을 입어 ‘새사람’이 된다. ‘죄의 용서와 새로운 삶’이라는 구원 사건이 세례 때에 펼쳐진다.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되면, 삼중 직무를 받게 된다. 세상에 복음을 선포하고 진리를 증거하고 증언하는 예언자로서, 빛과 소금이 되어 세상에 봉사하는 왕으로서, 세상과 하느님 사이에 다리가 되어 세상을 거룩하게 하는 사제로서 살아가는 사명이 주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세례를 받게 되면, 이사야, 예레미아, 에제케엘, 세례자 요한만 예언자가 아니라 우리가 예언자이고, 다윗만, 솔로몬만, 조선 왕조의 태정태세문단세들만, 2022년 9월 8일에 세상을 떠난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만 왕이나 여왕이 아니라, 우리가 왕 혹은 여왕이며, 서품을 받은 성직자들(신부, 주교, 추기경, 교황)만 사제가 아니라, 우리가 바로 사제다. 그래서 세례식은 예언자 등극식이요, 왕 혹은 여왕 즉위식이며, 사제 서품식이다.
메시아는 하느님으로부터 선별되어 머리에 기름이 부어진 사람이다. 메시아라는 히브리어를 그리스어로 번역한 것이 그리스도다. 세례를 받으면서 그리스도인이 된다고 말하지만, 그저 예수라는 분을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예수의 길을 따라 함께 걸어가는 사람이라는 의미에서만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뜻이 아니다. 세례를 받으면서, 특히 축성성유가 이마에 발리면서 우리 안에 존재론적인 변화가 일어나 우리들도 기름이 부어진 사람 바로 메시아가 된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또 하나의 그리스도가 된다는 말이다. 예수만 하느님의 아들인 것이 아니라, 세례를 통해 우리들도 하느님의 아들, 딸들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세례 받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바오로 사도가 갈라티아인들에게 보낸 편지의 한 대목은 이 물음에 대한 실존적인 답을 제시한다: «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 2,20) ». 그렇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살기에 우리는 또 하나의 그리스도이며, 우리 안에 그분이 계시기에, 그분께서 이 세상을 위해 목숨을 내어 놓았듯, 우리도 그렇게 살수 있다는 말씀이다. 세례는 바로 이러한 그리스도로 사는 삶에로 우리를 초대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세례는 세족례와 더불어 이루어지는 최후 만찬, 그리고 그를 이어 이루어지는 십자가상의 죽음과 부활로써 그 완성을 이룬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려던 순간,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을 말리며, 예수님께 이렇게 묻는다 : « 제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제게로 오시다니요 ? ». 요한은 예수께서 왜 세례를 받으려 하는지 알지 못했고, 이를 궁금해 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 지금은 이대로 하시오. 이렇게 해서 우리는 마땅히 모든 의로움을 이루어야 합니다 » 라고 말씀하셨다.
최후 만찬이 이루어지던 날 저녁,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려던 순간, 베드로는 예수님께 이렇게 말한다 : « 주님, 주님이 제 발을 씻으시다니요. 제 발만은 절대로 못 씻으십니다 ». 그러자 예수께서는 «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여러분의 발을 씻었으니, 여러분들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합니다 »라고 말씀하셨다.
세례 때의 요한의 물음은 세례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묻는 물음이다. 예수께서는 세례의 목적이 다름 아닌 의로움을 이루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셨다. 이 의로움이라는 것은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다. 사실 예수님의 공생활은 의로움을 이루어 가는 과정이었다. 그 의로움, 그 사랑의 정점이 바로 세족례와 최후의 만찬, 그리고 그를 이은 십자가상의 죽음과 부활이다.
이 일련의 사건들은 예수께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의로움을 이루는지, 어떻게 구체적으로 사랑하는지를 보여준 대사건, 사랑과 의로움의 계시 사건이자, 또 하나의 그리스도로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할 신자들의 삶의 원형, 삶의 본보기이다. 그래서 « 내가 여러분의 발을 씻었으니, 여러분들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합니다 »라는 말씀은 « 내가 여러분을 이렇게나 사랑했으니, 여러분들도 서로 이렇게 사랑해야 합니다 »라는 말씀과 상통한다. 그런데 우리가 과연 서로 사랑할 수 있을까? 정말 사랑할 수 있을까?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하느님은 사는 것이 힘에 부치고, 사랑하는 것이 두렵고 그 삶이 녹녹치 않음을 이미 잘 알고 있는 우리이기에 손사래를 치고 고개마저 떨구고 싶은 우리를 그 구렁텅이에서 건져 내어 당신의 몸과 피를 우리에게 먹이면서까지 우리로 하여금 다시 또 살게끔 하신다.
그 몸을 먹고, 그 피를 마시는 우리는 우리들의 나약함에도 불구하고, 바오로 사도를 따라 감히 이렇게 말할 수 있다 : 하느님이 우리편이신데,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 환난입니까 ? 역경입니까 ? 박해입니까 ? 굶주림입니까 ? 헐벗음입니까 ? 위험입니까 ? 칼입니까 ?...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에 힘입어 이 모든 일을 이기고도 남습니다(로마 8, 31-37) 그렇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그리스도가 된 우리도 예수님을 따라 목숨 걸며 사랑하는 삶을 살아 갈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