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6일 성주간 화요일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유다 이스카리옷, 그는 예수님의 12제자들 중에서 돈주머니를 맡았고, 가끔은 공금 일부를 횡령하기도 했다. 그는 예수님을 은전 30냥에 팔아먹고, 예수님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었으며, 예수님이 십자가 처형이라는 사형선고를 받게 되었을 때,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려고, 은전 30냥을 다시 제대관들에게 돌려 주려고 했었으나, 그러지 못했다. 그리고 결국 스승을 팔아 넘긴 자신의 죄에 대한 죄책감으로 목을 매어 자살을 했다.

신약 성경의 4복음서를 통틀어서 나오는 유다 이스카리옷에 대한 설명은 대략 이러하지만, 대부분, 요한 복음서에만 나온다. 왜 요한 복음사가는 집요하리만치 유다 이스카리옷에 대해서 이렇게 상세하게 다룰까? 유다의 배신이 예수를 죽음으로 몰고 간 가장 직접적인 이유였음을 알리기 위함이었을까 ? 그래서 그리스도교가 퍼지는 곳마다 유다라면 치를 떨게 하고, 유다를 영원한 증오와 적개심의 나락으로 떨어뜨리기 위해서일까 ?

요한 복음서는 우리에게 정의를 세우고, 평화를 지키며, 사랑하고, 희망하며, 생명을 돌보고, 자유를 누리라고 가르치지만, 증오나 적개심은 멀리하라고 가르친다. 유다의 배신과 제자들의 배반을 요한 복음이 상세하게 다루는 것은 그 제자들의 모습이 비단 제자들만 그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도 그러한 배신과 배반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1963년,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년 10월 14일-1975년 12월4일)가 «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Eichmann in Jerusalem)이라는 제목의 책을 출판했다. 이 책의 부제는 «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 »(A report on the banality of evil)였다. 홀로코스트와 같은 역사 속 악행은 광신자나 반사회성 인격장애자들이 아니라, 국가에 순응하며 자신들의 행동을 보통이라고 여기게 되는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행해진다는 것을 두고,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이라고 이름 불렀다. 2차대전 당시 독일에 의한 홀로코스트,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의 집단 학살 사건의 주범이었던 루돌프 아이히만에 대한 재판을 시작에서부터 끝까지 지켜 보았던 한나 아렌트는 « 악의 평범성 »이라는 개념으로 루돌프 아이히만의 죄성을 밝혀내었다.

평범한 사람들이 마치 기계와도 같이 자기가 행하는 일을 비판적으로 사고하지 않는 것은 악으로 이어질 수 있다. 아무런 생각 없이 국가의 명령이나 임무를 당연시하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해서는 안 되는 일에 가담하게 될 수 있다. 관료적인 효율성, 권위에 대한 복종, 물질 만능에 따른 경제적인 효율성, 국익-반공-애국심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잘못되었음을 인식하지 못한 채 악행에 가담하거나 침묵할 수 있다는 것이 한나 아렌트가 밝혀낸 루돌프 아이히만의 죄성이었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예수님을 은전 서른 닢에 팔아 넘긴 유다 이스카리옷이나 2차 세계대전 당시 100만명에 육박하는 유대인들을 가스실에서 학살했던 아우슈비츠 수용소장 아돌프 아이히만이나 인두껍을 쓴 악마가 아니었다. 그들 역시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악의 평범성’이 가지고 온 비극, 그 비극을 막을 수 있는 길은 깨어있는 시민의식과 깨어있는 양심이다. 타인의 고통이 결국은 나의 고통이 될 수 있음을 인식하고, 깨어있는 시민의식, 그리고 공감하는 연대의식을 갖추는 데서 찾아야 한다. 우리 시대의 영성, 깨어있는 시민의식과 연대의식의 또 다른 말이다. 오늘 복음은 나에게 이렇게 다가온다.

 여러분에게 오늘 복음은 어떻게 다가오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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