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회복
2024년 4월 꾸리아 훈화는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하신 “노년에 대한 교리 교육 8-2”로 이어가 고자 합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초기 그리스도교에 있어서 매우 강력하고 매우 유혹적인 함정이었던 이단 영지주의는 이를 명확 하게 이론화했습니다. 다음과 같이 말하는데, 이는 꽤 오래된 것입니다. 곧, 신앙은 실천이 아니라 영성이 고, 삶의 형태가 아니라 마음의 힘이라는 것입니다. 이 이단에 따르면 신앙의 충실성과 신앙의 명예는 삶 의 행동, 공동체의 제도, 몸의 상징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이 관점의 유혹은 강합니다. 왜냐하면 그 나름대로 논란의 여지가 없는 진리를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곧, 신앙은 생계유지에 관한 규칙이나 사회적 관습으로 전락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신앙은 그와 전혀 다르다는 말입니다. 문제는 영지주의 방식으로 이러한 진리를 급진적으로 밀고 나가면 그리스도교 신앙의 현실성을 무효화한다는 데 있습니다. 왜냐하 면 그리스도교 신앙은 현실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그저 ‘사도신경’을 암송하는 것이 아닙 니다. 생각하고, 느끼고, 그렇게 살아내야 합니다. 우리 소매를 걷어붙이고 해야 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영지주의는 “하는 체”하라고 제안합니다. 중요한 것은 여러분의 내면에 영적인 지식이 있다는 것이고, 그 다음에 여러분이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는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오늘날 영성에 관한 수많은 장소에서 몹시도 유행하는 영적 깨달음에 관한 첫째가는 이단일 뿐입니다. 그 것은 공동체의 삶에서 하느님의 구체적인 표징을 보여주고 몸의 행위로 마음의 집착에서 벗어나려는 사 람들의 증거를 공허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이단이라는 말을 쓰도록 합시다. 이단 가운데 하나인 영적 깨달음에 대한 유혹은 이 시대의 종교 적 일탈 중 하나입니다. 영적 깨달음에 대한 영지주의의 유혹은 항상 현재 진행형입니다. 우리 사회와 문 화의 여러 동향에서 신앙의 실천은 때로는 문화적 아이러니의 형태로, 때로는 은밀한 소외와 함께 부정적 인 묘사에 시달립니다. 예수님 시대에 이미 존재했던 이 영지주의자들은 신앙의 실천이 쓸모없고 심지어 해로운 외적 표현, 곧 시대에 뒤떨 어진 잔재이자 겉모습을 위장한 미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요컨대 신 앙은 늙은이들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무차별적인 비판이 젊은 세대에게 가하는 압력은 거셉니 다. 물론 우리는 신앙의 실천이 영혼 없는 외적인 활동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이는 또 다른 위험입니다. 지금까지 말한 영지주의와는 반대죠. 그러나 그 자체로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아마도 우 리 노인들에게는 중요한 사명이 있을 것입니다. 곧, ‘신앙의 명예를 회복’하고, 한결같은 태도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엘아자르의 증거입니다(2마카 6,18-31 참조). 그는 마지막까지 한결같았습니다. 신앙의 실천은 우리 나약함의 상징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 강함의 표시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닙니다. 우리가 주님의 길로 들어설 땐 아이들처럼 장난치면 안 됩니다.” 1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여전히 우리 주위에 만연한 영지주의에서 벗어나 그리스도교 신앙을 살아가길 바라십니다. 자신의 믿음만 앞세우고 말 뿐인 실천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생각하고, 느끼고, 그렇게 살아가길 권고하십니다. 우리가 노인이 될 때까지 잘 살아온 신앙을 이제 다음 세대 젊은이들에 게 잘 전수할 수 해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믿음이 헛되지 않고, 의미 있음을 선배 신앙인으로서 지 혜롭게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1 https://www.vaticannews.va/ko/pope/news/2022-05/papa-francesco-udienza-catechesi-vecchiaiafede-giovani-bibbia.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