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0일 사순 제5주간 수요일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동문서답東問西答, 어떤 물음에 대해서 당치도 않은 엉뚱한 대답을 하는 사람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동문서답의 전형적인 유형을 우리는 오늘 복음을 통해 만난다. 예수께서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신다: « 당신들이 내 말 속에 머물러 있으면, 참으로 내 제자들입니다. 그러면 당신들은 진리를 알게 될 것이고, 진리는 당신들을 자유롭게 할 것입니다 ». 그러자 그들은 « 우리는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일찍이 아무에게도 종 노릇을 해 본 적이 없소 »라고 대답한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들이기 때문에 해방될 필요가 없다고, 지금까지 노예가 되어 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이미 에집트, 바빌론, 그리고 이제는 로마 제국의 식민지가 되어 버린 나라의 사람들이 이런 주장을 한다는 것이 도대체 말이 되는가? 역사 속에서 실제로 있었던 사실조차 부정해 버리는 이들을 두고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자신들의 역사와 현실을 직시하지 아니하고, 모든 탓을 하느님께로만 돌리고자 하는 유대인들의 현실 도피, 책임 회피를 스스로 고발하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들이기 때문에 정치적인 속박은 진정한 속박이 될 수도 없고, 결코 오래 가지 못한다고 믿고 있었다. 자신들이 당하는 정치적 속박은 하느님께서 벌로 주시는 그저 단순한 상황일 뿐, 그들은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 곧 이스라엘은 결코 속박당하지 않는 나라가 되리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그들의 순진하기 짝이 없는 믿음은 결국 역사를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하는 어리석음을 낳았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편협한 역사 의식을 바로잡아 주신다. 정치적인 속박도 종살이를 하는 것과 똑같은 것이고, 무엇보다 인간으로 하여금 종살이를 하게 하는 것은 죄라는 것을 분명히 알려 주신다: « 진실히 진실히 당신들에게 이릅니다. 죄를 짓는 자는 누구든지 죄의 종인 것이오 ».
 
신앙을 가지게 되면서 사람들은 하느님도 발견하고, 그분이 삼라만상의 주님이라는 것도 받아 들이게 된다. 그러나 신앙 생활 초기에 가지게 되는 하느님에 대한 신앙은 오늘 복음에 나오는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순진하기 그지 없는 신앙, 하느님만 믿게 되면 만사가 형통할 것이라는, 삶이 가져다 주는 아픔과 고통을 잠시 잊게 해주는 마약과 같은 것에 불과한 경우들이 허다하다.
 
신앙생활을 좀 더 하다 보면, 믿고 따르면서도 정작 똑같은 죄와 똑같은 유혹에 걸려 넘어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매일 똑같은 죄를 고백하며 단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하는 영적 절망 앞에서 머리를 숙여야만 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믿는다고 하면서도 정작 가슴 속에 미움은 그대로 있고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은 그대로이고 게으르고 탐욕을 부리고 자유보다는 속박을 진리보다는 어리석음을 옮음 보다는 거짓을 성실함 보다는 눈앞에 이익에 팔려 거듭 거듭 넘어지고 마는 자신의 한계를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에 직면하게 될 때에, 적지 않은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정말로 내 마음 안에 하느님의 진리라는 것이 자리 잡고 있는가? 하느님이라는 분이 나를 왜 붙잡아 주지 않고, 왜 죄 속에서 살게 내버려 두시는가?’ 이러한 생각들이 하나씩 둘씩, 머릿속을 지배하다 보면, 마침내 냉담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어 버린다. 냉담의 길에 들어서기 시작하면, 진리보다 편리를, 실용을 선택하게 되고, 방종을 선택하게 된다. 결국 또 하나의 다른 구속 다른 멍에에 갇혀 살게 되어 버린다. 자유를 향한 욕망이 끝이 없고 만족을 향한 욕망에도 끝이 없다는 것, 결국은 그러한 삶이 더 참혹한 굴레가 되어 버린다.
 
냉담의 길에 들어 섰다가 되돌아 온 사람들의 말들을 들어보면, 하느님이 문제가 아니었다고 한다. 진리가 문제가 아니었다고 한다. 오히려, 정작 문제가 된 것은 미사에 참례하고, 하느님 말씀을 듣고 읽고 쓰기까지 하면서도 정작 하느님의 말씀을 살아내지 못하는 자신이 문제였다고 한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기도 하고 봉사하면서도 번번히 이것이 나의 일과 내가 수고 하고 내가 선택하고 내가 결정하고 내가 행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자신이 문제였다고 한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 진리가 여러분을 자유롭게 할 것이오 »라는 주님의 말씀이 2024년 3월 20일, 오늘 이 나라 이 땅, 대한민국을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는 삶의 기본 방향을‘거짓 없음’, ‘꾸밈없음’에 두고 살아야 한다는 말씀으로 다가온다. 현실을 직시하고, 자신의 몰골과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그 인정에서 비롯되는 겸손함 속에서 살아가면, 하느님께서는 자유라는 은총을 베푸신다는 말씀으로 다가온다. 자기가 지은 죄가 자기를 속박할 뿐만 아니라, 자기가 무책임하게 대해왔던 이 땅의 현실이 자기를 속박하며, 자기 자신에 대한 끊임 없는 성찰과 내가 속해 있는 이 사회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과 참여가 속박으로부터의 자유로움을 느끼게 하는 첫걸음이라는 말씀으로 다가온다.

여러분에게 오늘 복음 말씀은 어떻게 다가오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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