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19일 화요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절망스런 세상은 어둡고, 어지러우며, 온갖 말들이 횡행한다. 그런 말들 가운데 진리를 증언하는 소리들도 분명 있다. 잘못되어 가는 세상을 꾸짖는 소리, 사람이 다 죽어 나가는데도 자신은 안녕히 잘 지내고 있다는 사람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소리, 함께 아픔을 공감共感하고 공유共有하는 소리들도 있다. 이러한 진짜 소리들이 모이고 모이면, 절망의 땅에 희망을 가져다 주고, 땅의 슬픔과 아픔을 위로하면서도 땅을 꾸짖는 하늘의 소리가 된다.
 
구약시대, 바빌론으로 유배를 떠나게 되었던 이들, 유배 중에 있었던 이들, 그리고 유배가 끝나고 돌아왔던 이들이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거릴 때에도 하늘의 소리는 예언자들을 통해 들려왔다. 그 소리에 귀 기울였던 극소수의 사람들도 있었으나, 많은 이들은 절망 앞에 체념하기도 했다. 하늘의 소리는 들을 귀가 있는 이들, ‘하느님만이 구원하실 수 있다’는 믿음으로 희망하는 이들에게는 강력한 힘이 되고, 그들의 든든한 뒷배가 되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 하늘의 소리는 참으로 무력했다.
 
그러나 더 이상 절망 속에서 죽음만을 기다리며 살 순 없다는 각성覺性이 생겨나고,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리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듯, 한번이라도 꿈틀거려 보아야 한다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늘며, 하늘의 소리는 마침내 한 아기의 탄생이라는 희망의 씨앗으로 구체화된다. «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가 그리 울어야 했고,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어야 했으며,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잠도 오지 않아야 했듯, 희망의 씨앗이 발아發芽되기까지 인간으로서는 감히 셀 수 없는 고통의 시간들이 흘러야 했고, 그 시간들 속에서 절규하는 사람들의 소리를 들으신 하느님은 마침내 그 희망의 씨앗을 틔우기로 하신다. 성경은 이러한 시간의 흐름을 두고, « 때가 차서 하느님 나라가 왔다 »고 증언한다.
 
« 절망의 시대에는 죽을 날이나 기다리고 납작 엎드려라, 뱀의 대가리가 되려 하지 말고, 용의 꼬리에 붙어라, 돈 많은 자들 힘 있는 자들 옆에 붙어야 콩고물이 더 떨어진다 »와 같은 개가 짖는 소리들이 시쳇말로 상식으로 통하던 시대, 그런 거짓 상식 속에 길들여져 있던 요셉도 자기 아내가 될 마리아가 어떤 놈의 씨인지도 모르는 아기를 가졌을 때, 자기 깐에는 그래도 생명을 존중한답시고 남몰래 파혼하기로 했다. 그 시대에는 처녀가 아기를 가지면, 동네 광장에 나가서 그 사실을 공표해야 했고, 그 아기의 아버지를 찾아내어 책임을 물게 했다. 아기의 아버지가 나타나지 않으면 결국 그 처녀는 동네 사람들의 돌팔매질에 죽음을 당해야 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법이었다. 요셉은 마리아와 그 뱃속의 아기가 비정하기 짝이 없는 돌팔매질로 목숨을 잃지 않게 하려고, 몰래 파혼하기로 마음을 먹었다지만, 그 시절, 파혼은 결국 마리아와 그녀의 태 속에 있는 아기를 사지死地로 내모는 잔인한 짓이었다.
 
자기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그렇게 하리라 마음을 다잡으려던 때, 하느님의 전령이 그에게 하늘의 소리를 들려 준다: « 다윗의 자손 요셉,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 들이시오.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오.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구원자)라고 하시오.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오 ». 하늘의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든 요셉은 상식적이었던 자신의 삶의 방식에서 돌아서서 하느님의 비상식非常識의 삶 속으로 들어간다.
 
오늘 우리가 들었던 복음의 마지막 부분에서 마태오 복음사가는 요셉의 심중에 일었던 수많은 갈등들을 한방에 다 날려버리는 요셉의 결의를 이렇게 표현한다 : «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하였다 ».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꿈은 꿈일 뿐이라고 세차게 머리를 쥐어 흔들고는 자신이 겪어야 할 미래를 받아 들이지 않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나 요셉은 결국 그렇게 하지 않았다. 자신의 아내 마리아와 같은 길을 걸어가겠다고, 아내와 생사고락을 함께 하겠다고 했던 것이다. 이러한 요셉 성인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보호자” 역할이었다. 성령으로 아기를 잉태한 성모님을 보호하였고, 이집트 피난 때 성모님과 아기 예수님을 보호하였다.
 
요셉 성인은 예수님의 탄생을 전하는 대목 이후에는 복음서에 등장하지 않는다. 세례자 요한과 마찬가지로 요셉 성인은 자신의 임무를 다하고 무대 뒤로 사라진다. 요셉 성인을 일컬어 “침묵의 성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성 요셉 대축일을 맞아 요셉 성인의 겸손과 침묵을 닮고 자신의 활동이 교회에 유익하기를 바라며, 또 봉사 그 자체로 만족할 수 있는 내적인 힘을 주시기를 청해야겠다는 생각이 새록새록 든다. 오늘 요셉 성인은 나에게 이렇게 다가온다.

여러분에게 오늘 축일은 어떻게 다가오고 있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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