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6일 사순 제3주간 수요일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이 나라, 이 땅에서 고만고만하게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부분 법 아래에서 산다. 세금 고지서가 날라오면, 납부 기일 내에 어떻게 해서든지 세금을 내려고 바둥거린다. 혹시라도 법을 어겨서 범칙금을 물게 되면, “에이, 재수없어!”라고 말도 하고, 비록 순간 똥 씹은 표정은 짓더라도, 범법자가 되지 않으려고, 벌금을 낸다.
 
법 덕분에 밥벌이를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법과 함께 사는 사람이다. 또 법대로 사는 사람도 법과 함께 사는 사람이다. 예수 시대에는 글자 그대로, 법대로 살던 사람들이 있었다. 너무나도 철저하게 법을 지켜서, 보통 사람들은 엄두도 못 낼 정도로, 그래서 그들에게 붙여준 이름도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사람들, 분리된 사람들이라는 뜻을 가진 바리사이였다.
 
법과 함께 사는 사람들은 주어진 법들을 철저하게 따르려는 사람들도 있지만, 법의 논리로 백성 위에 군림하려는 이들도 있다. 일부 바리사이들과 예루살렘 성전에서 완장을 차거나 거룩한 제의를 입고 성전을 들락날락하던 사제들,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장사하던 이들과 그들로부터 상납을 받으며 호의호식하던 대사제 가문들, 귀족들과 로마제국에 빌붙어 부귀영화를 누리던 친로마파들이 주를 이뤘던 사두가이들이였다. 2천년 전, 법 위에 존재하던 사람들은 그 이름과 모습만 바뀐 채 여전히 세상 곳곳에서 버젓이 살아가고 있다. 이 나라, 이 땅에도 법 위에 존재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다. 법 위에 사람 없고, 법 아래 사람 없다지만, 유전무죄, 무전유죄!!! 유권무죄, 무권유죄 !!! 법은 있지만, 쩐이 있으면, 법 위에 살수 있는 나라, 법은 있지만, 힘이 있으면, 법 위에 살 수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법 아래에 사는 사람, 법과 함께 사는 사람, 법 위에 사는 사람, 이 세 부류의 사람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공존하는 것 같아 보인다. 하나의 나라 안에서 살아가니까 그렇게 보인다. 그러나 그들의 삶의 양식과 그들이 만나는 사람들, 그들의 놀이터와 일터는 천양지차이다.
 
율법폐기론자들은 쌍수를 들고 예수님을 환영했고, 율법지상주의자들은 예수님을 두고 거짓 예언자, 선동꾼으로 매도하고, 그를 죽이고 싶은 증오심을 품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 모든 것들을 물리치고, 율법의 근본 정신과 목적을 확고히 하셨다. 결의에 찬 예수님의 모습을 참으로 잘 드러내는 문장이 오늘 복음에 나온다. «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시오.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소.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오 »(마태 5, 17-18).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율법과 예언서의 근본 정신은 세상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 하느님을 향한 사람들의 사랑을 눈으로 볼 수 있게끔 해주는 성사다. 사람을 살리는 법, 생명을 살리고, 생명을 성숙케 하는 법은 반드시 지켜야 하지만, 사랑이 배제된 법은 폐기되어야 한다. 돈의 많고 적음에 따라서, 힘이 있고 없음에 따라서 그 적용이 달라지는 법은 있으나 마나 한 법이며, 그런 법은 당장이라도 폐기되어야 한다. 거짓과 중상모략, 그리고 마녀사냥으로 끊임없이 공안 공포 속으로 법 아래에 살고 있는 백성을 몰아가는 짓거리는 당장 중단되어야 한다. 오늘 복음은 나에게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다. 시절이 하도 수상殊常하기 때문이다. 여러분에게 오늘 복음은 어떻게 다가오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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