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 25일 사순 제2주일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신학교에 입학하고, 2학년이 되었을 때, 영성지도 신부님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졌다. 나는 그 때, 석찬귀 스테파노 신부님을 영성지도 신부님으로 선택했다. 석 신부님께서는 신학교에서 근대 철학, 현대 철학, 인식론, 그리고 자연철학 등, 신학생들에게 주로 철학과목을 가르치셨다. 내가 그분을 영성지도 신부님으로 선택했던 이유는 강의록에 대한 태도 때문이었다. 그 신부님은 매년마다 강의록을 새롭게 쓰셨다. 한 해 쓰고 나서, 다음해에도 그 강의록을 사용하셔도 무방할 텐데, 아니면, 강의록 내용을 좀더 보완을 하시든지, 첨삭을 하셔도 될 텐데, 굳이 연말이 되면, 당신께서 한 해 동안 사용하신 강의록을 일부러 다 찢어 버리셨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고인 물이 썩기 마련이듯이, 당신 스스로도 게을러질 뿐만 아니라, 당신의 사고가 경직되고, 썩어 버리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오늘은 사순 제2 주일이다. 오늘 말씀의 전례에서 우리가 들었던 독서와 복음은 떠남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제1 독서는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 네 고향과 친척과 아비의 집을 떠나 내가 장차 보여 줄 땅으로 가라 »고 명령하신 후, 아브라함이 자기 고향 갈대아 우르를 떠나, 아내인 사라와 함께 나그네 길에 올랐다가, 마침내 귀하게 얻은 자식인 이사악을 하느님께 드릴 제물로 바치는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해준다. 아브라함이 유목민이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아브라함에게 « 떠난다 »는 것은 아주 자연스럽고 평범한 삶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오늘 제1독서에서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요구하시는 떠남은 단순히 거처를 옮기는 것이 아니라, 그 동안 자기가 살아온 과거와 삶의 토대와의 완전한 단절, 그리고 자기 후손의 희생이라는, 자기가 계획해왔던 미래와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전의 떠남이 자기 양들에게 먹일 더 좋은 풀과 물을 찾아서 자신의 재산을 지키고 불리기 위한 것이었다면, 하느님의 명령에 의한 떠남은 자신의 소유욕과 이기심과 안일함에서 떠나라는 것이었다.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떠나라고 하신 것은 더 큰 공동체와 연대하고, 희망 찬 미래를 위해 좁은 틀을 깨고 개인과 현재의 안일을 떠나게 하려고 하신 것이었다. 이 떠남은 하나의 도전이고 결단이었다. 아브라함의 떠남처럼, 끊임없이 현재의 안일함을 걷어 차버리고 많은 사람의 행복과 희망을 위해 떠나는 나그네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에서도 발견된다. 신약성경의 4 복음서들이 공통으로 전하는 예수라는 분은 십자가 죽음과 고통이 기다리고 있는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을 가는 나그네다.
 
             오늘 복음은 그 나그네 길에서 있었던 변모 사건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예수님은 높은 산(타볼산으로 알려져 있다)으로 올라가셔서 당신의 진짜 모습을 보여 주신다. 이에, 베드로는 황홀경에 취해서 모든 것을 내버려둔 채로, 떠나온 길에서 가던 길을 멈추고 산에 머물자고 한다. 베드로의 말은 예수님에게 있어서는 유혹이었다. 안일함에 머물고자 하는 유혹, 참으로 달콤한 유혹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 알뜰한 유혹을 기어이 물리치신다.
 
우리들도 신앙인으로 살아가면서 참으로 달콤한 유혹에 노출될 수 있다. 삶의 외적인 백그라운드를 좀더 풍성하게 하기 위해서, 나 하나 돈 좀 더 만지고, 나 하나, 좀 더 윗자리에 빨리 오르기 위해서, 내 앞에 놓여질 수 있는 좀 더 손쉬운 방법들, 일상화된 악의 조각들, 아주 달콤해 보이고, 부드러워 보이는 유혹의 손짓들에 노출될 수 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참으로 달콤한 유혹이라는 것이 있다. 금육재 지키자고 하니, 고기 안 먹고, 대신 회 먹자고 하는 유혹들을 비롯해서, 이웃 사랑의 요구와 부합하지 않는 사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영성을 강조하려는 유혹, 기도한답시고, 선교나 사회참여활동은 하지 않으려는 유혹, 성당에 나와 열심히 기도나 하고, 거룩하게 미사나 참례하지, 세상일에 왜 간섭하느냐고, 불평, 불만을 늘어 놓으려는 유혹도 있다. 세상의 논리, 힘의 논리, 돈의 논리, 권력의 논리를 교회 안에다 버젓이 적용해, 교회나 세상이나 돌아가는 건 똑같지 않느냐고 교회와 세상을 동일시하려는 유혹도 있다. 인간의 고통에 나몰라라 무관심하거나 아예 침묵하려는 유혹도 있다.
 
이런 유혹들은 우리들로 하여금 편안함에로 안주하게 하려는 유혹이고, 결국은 우리를 썩은 물이 되게 하는 유혹이다. 그렇기 때문에, 물리쳐야 하는 유혹들이다. 그러면, 그런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 힘은 어떻게 생길까 ? 오늘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의 열정에 가득 찬 말씀이 바로 이 물음에 대한 답이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세례를 받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적어도 아브라함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언제나 안주하려는 유혹을 떨쳐 버리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신앙인이라고 해서, 유혹을 받지 않는 법은 없다. 신앙인도 유혹을 받고, 때로는 그 유혹에 넘어 가기도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애써 조심하고, 유혹에 걸려 넘어지더라도, 얼른 일어 나려고 온갖 애를 쓴다. 유혹을 이겨내는 길, 유혹을 이겨내는 힘, 그 힘은 바로 우리들의 주님, 우리들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 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은 나에게 오직 그리스도만이 우리들의 진정한 힘이요, 뒷배요, 우리들의 구세주임을 다시 한번 고백하게 한다.
여러분에게 오늘 독서와 복음은 어떻게 다가오고 있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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