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 23일 사순 제1주간 금요일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율법이나 계명과 같은 법은 인간 세계 속에서 어떤 특정층을 겨냥하거나, 그 인간세계 속에서 금기시하거나, 지지하거나, 두둔 혹은 격려하는 속내가 존재한다. 예컨대, 안식일법은 하루 벌어 하루 살이 해야 하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법안이다. 일주일 중에 하루만이라도 제대로 쉬도록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법인 것이다. 정결례법은 위생에 대한 법이다. 옛날에는 바이러스니, 암세포니 하는 것들에 대해 전혀 무지했지만, 청결하지 못한 더러움이 병을 불러온다는 것 정도는 체험으로 알고 있었다. 처녀가 아기를 가지면, 그 마을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는 법은 아기의 생명을 보호하고, 아기의 아버지를 찾아내 아기와 처녀의 삶을 책임지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법들이 그 근본정신이 잊혀진 채, 무미건조한 법조문만 남고, 엄격한 법의 실행만 남아 버리면, 반드시 그 법들의 피해자가 발생하기 마련이고, 법조문을 좔좔 외울 만큼, 법을 잘 아는 사람들은 그 법들 덕분에 힘을 갖게 되고, 권력과 금력이 서로 짬짜미가 되는, 카르텔을 형성할 수 있게 된다. 위법이나 탈법을 저질러도, « 법꾸라지 »가 되어 법망을 이리저리 피할 수 있는 노련함까지도 갖추게 된다. 가방끈이 짧아 글도 제대로 읽지 못하는 사람들은 뭐가 법이고, 뭐가 법이 아닌지 알지 못하니, 똑똑한 사람들이 « 법 »조항을 들먹이며 시키는 것이라면 뭐든 해야 하는, 노예나 다름없는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다.
 
빵 한 조각 훔친 죄로 19년간 감옥에서 살아야 했던 장발장(Jean val Jean)은 법조문만 덩그러니 남은 법의 피해자였다. 남자와 여자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남녀유별男女有別’이 그 근본정신인 상호 존중이 사라지면, ‘남녀차별男女差別’이 되어버리고, 거기에다 가부장적인 문화가 가세하게 되어, ‘여성은 약하다’, ‘약하니 보호해줘야 한다’는 식의 그릇된 인식이 삶의 공간을 지배하게 되면, 여성은 언제나 유아기적 상태에 머물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되어 버린다. 심지어, 입에 담기조차도 거북한 말들, « 여자 팔자는 뒤웅박 팔자다 », « 북어와 여자는 사흘에 한번은 패야 더 맛있다 », « 어디 여자가 감히? », « 여자가 여자에게 더 잔인하다 », 이런 따위의 말도 안 되는 말이 버젓이 통용되어 버린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의 의로움을 뛰어넘는 의로움을 가져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이 의로움은 율법이나 계명의 근본 정신을 알아차리고, 그 근본 정신을 실천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예수님의 말씀, 성경의 말씀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이 나라, 이 땅 곳곳에 있는 성당에서, 예배당에서 들려올 것이다. 하느님의 계명과 율법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말씀을 듣는 것과 그 말씀을 살아내는 것은 분명 다르다. 믿음은 말씀을 듣는 데서 온다고 했지만, 제대로 말씀을 듣지 못한 채로 믿음이라는 것을 가지면, 믿음과 삶을 결부시키지 못하고, 믿음 따로, 삶 따로가 되며, 믿음과 삶의 분리가 가속화되면, 믿는 사람들이 다닌다는 거기는 더 이상 교회가 아니게 되고, 예수는 없거나 예수는 박제된 채로 남고, 예수의 이름으로 인간의 탐욕은 거룩함으로 포장되어 버리며, 그런 사람들의 모임은 ‘교회’를 빙자한 이익집단이 되어 버린다. 그리고 그 교회라는 곳은 그저 법조문만 남은 채로, 그 법조문을 제대로 지키느냐, 못 지키느냐로 성실한 신자, 그렇지 못한 신자로 심판받는 재판소가 되어 버린다.
 
오늘 복음은 나에게 제대로 예수를 알려야 하고, 제대로 예수의 삶을 살아보자고 신자들을 독려하고, 응원하고 격려해야 하는 사제들의 사명을 다시금 일깨우며, 성큼성큼 나에게로 다가온다.

여러분에게 오늘 복음은 어떻게 다가오고 있는가?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84 2024년 3월 13일 사순 제4주간 수요일 미사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4.03.12 14
83 2024년 3월 12일 사순 제4주간 화요일 미사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4.03.12 6
82 2024년 3월 11일 사순 제4주간 월요일 미사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4.03.10 8
81 2024년 3월 10일 사순 제4주일 미사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4.03.10 14
80 2024년 3월 8일 사순 제3주간 금요일 미사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4.03.08 12
79 2024년 3월 7일 사순 제3주간 목요일 미사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4.03.08 8
78 2024년 3월 6일 사순 제3주간 수요일 미사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4.03.08 5
77 십자가의 길 기도(2024년 3월 1일)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4.03.02 63
76 2024년 3월 1일 사순 제2주간 금요일 미사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4.03.01 16
75 2024년 2월 29일 사순 제2주간 목요일 미사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4.03.01 8
74 2024년 2월 28일 사순 제2주간 수요일 미사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4.02.28 6
73 2024년 2월 27일 사순 제2주간 화요일 미사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4.02.28 9
72 2024년 2월 26일 사순 제2주간 월요일 미사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4.02.27 10
71 2024년 2월 25일 사순 제2주일 미사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4.02.27 12
» 2024년 2월 23일 사순 제1주간 금요일 미사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4.02.24 11
69 2024년 2월 22일 목요일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 미사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4.02.24 10
68 2024년 2월 21일 사순 제1주간 수요일 미사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4.02.24 5
67 2024년 2월 23일, 사순 제1주간 금요일 미사와 함께 바치는 십자가의 길 기도문 file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4.02.24 14
66 2024년 2월 20일 사순 제1주간 화요일 미사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4.02.24 9
65 2024년 2월 19일 사순 제1주간 월요일 미사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4.02.24 11
Board Pagination Prev 1 ...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Next
/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