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 16일 재의 예식 다음 금요일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그릇 안에 무언가가 가득 차 있으면, 그 그릇은 쓸모가 없다. 그릇은 무언가를 담기 위한 것이다. 그릇이 비어 있어야, 그 그릇을 채울 수 있는 것처럼, 자기 안에 편향된 하느님에 대한 생각이나, 어줍잖은 지식으로 알고 있는 하느님, 예수, 교회, 이런 것들을 비워 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하느님을 믿고,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 사람이 되신 하느님이라고 고백하는 데 있어서는 먼저 그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아야 한다. 그런 앎을 가능케 하는 데 있어서 최고의 방법은 성경을 읽는 것이다. 세례 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편향된 하느님에 대한 생각이나, 어깨 너머로 들어왔던 지식들을 과감하게 접고, 성경이 알려주는 하느님, 성경이 증언하는 예수를 받아 들여야 한다. 그리고 예수를 주님으로 고백하던 초대 교회의 삶의 모습에 대한 증언도 받아 들여야 한다.
전통적으로 교회는 하느님의 사랑을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죄인인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해왔다. 하느님은 죄를 용서하시는 분이라고 말이다. 마치 죄를 짓고 뉘우치면서, 죄에 대한 용서를 청해야만, 하느님이 그제서야 용서해주고, 사랑을 베풀어 주는 듯한 인상을 오랜 세월 동안 신자들에게 그런 하느님을 알려 왔다. 교회가 단식을 지키고 금육을 지키라고 한 것은 죄를 지은 인간이 스스로에게 얼마간의 제재를 가하면서 자신의 몸과 마음을 정화시키고, 자기 죄에 대한 보속을 하기 위해서였다.
전통적으로 교회는 하느님의 사랑을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죄인인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해왔다. 하느님은 죄를 용서하시는 분이라고 말이다. 마치 죄를 짓고 뉘우치면서, 죄에 대한 용서를 청해야만, 하느님이 그제서야 용서해주고, 사랑을 베풀어 주는 듯한 인상을 오랜 세월 동안 신자들에게 그런 하느님을 알려 왔다. 교회가 단식을 지키고 금육을 지키라고 한 것은 죄를 지은 인간이 스스로에게 얼마간의 제재를 가하면서 자신의 몸과 마음을 정화시키고, 자기 죄에 대한 보속을 하기 위해서였다.
생명을 살리고, 생명의 성숙을 도모하고, 생명을 보호하며, 생명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배우는 교회, 그래서 교학상장(敎學賞狀)하는 교회이기 보다는 성직자, 수도자들의 일방적인 가르침과 그에 대한 무비판적인 순명을 마치 신앙생활 잘 하는 것 인양 이야기해 온 교회는 신자들로 하여금 하느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느끼게 하기 보다는 신앙생활의 기쁨을 빼앗고, 신앙생활을 마치 죄를 기워 갚는 삶, 의무만이 가득 찬 삶, 시키는 것만 열심히 하면 되는 삶, 율법과 계명을 곧이 곧대로 지키는 삶으로 여기게 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신다. «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소 ? » 신앙 생활을 하는 것은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삶과 같다.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율법 지키고, 의무 지키는 것만이 아니다. 그 율법과 의무가 왜 주어졌는지를 깨닫고, 그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알아 차리며, 하느님의 일을 한다는 것과 상통한다. 하느님이 나를 사랑하고 계신다는 것을 가장 잘 느낄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 하느님의 일을 하면 된다. 하느님의 일을 하다 보면, 느끼게 된다. 하느님께서 이끌고 계신다는 것을 말이다. 하느님께서 사랑하고 계시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면 하느님의 일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 참으로 묘하게도 오늘 제1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가 알려준다. 불의한 결박을 풀어주는 것, 멍에 줄을 끌러 주는 것, 억압받는 이들을 자유롭게 하는 것, 모든 멍에를 부숴 버리는 것, 자기의 양식을 굶주린 이와 함께 나누는 것, 가련하게 떠도는 이들은 집으로 맞아 들이는 것, 헐벗은 사람을 보면 덮어 주는 것, 혈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 이러한 일들이 바로 하느님의 일이다. 정의, 사랑, 평화를 위해 일하는 것, 특히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하며, 함께 더불어 살아 가는 것, 그것이 바로 하느님의 일이다.
그러면 하느님의 일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 참으로 묘하게도 오늘 제1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가 알려준다. 불의한 결박을 풀어주는 것, 멍에 줄을 끌러 주는 것, 억압받는 이들을 자유롭게 하는 것, 모든 멍에를 부숴 버리는 것, 자기의 양식을 굶주린 이와 함께 나누는 것, 가련하게 떠도는 이들은 집으로 맞아 들이는 것, 헐벗은 사람을 보면 덮어 주는 것, 혈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 이러한 일들이 바로 하느님의 일이다. 정의, 사랑, 평화를 위해 일하는 것, 특히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하며, 함께 더불어 살아 가는 것, 그것이 바로 하느님의 일이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기뻐할 때에, 기뻐하지 못하고, 슬퍼할 때에 슬퍼하지 못하는 인생은 참으로 가련한 인생이다. 남들이 기뻐할 때에 슬퍼하고, 남들이 슬퍼할 때에 기뻐하는 인생도 외로운 인생이다. 함께 기뻐하고, 함께 슬퍼하는 일, 이것이 연대이다. 내가 아프면, 너도 아프다고 함께 아픔을 공유하는 것, 이것이 연대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주님의 계명을 오늘날의 상황에 맞갖게 이름 붙인 것이 바로 연대다. 오늘 독서와 복음은 나에게 연대하라고 다그친다.
여러분에게 오늘 독서와 복음은 어떻게 다가오고 있는가?
여러분에게 오늘 독서와 복음은 어떻게 다가오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