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 11일 조순이 베르타 할머니 장례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음력 1월 1일, 까치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라고 노래하며, 한동안 만나지 못했던 가족들을 다시 만나는 날, 그리움이 쌓이고 쌓이면, 보고픔이 되고, 보고픔이 쌓이고 쌓여 더 이상 쌓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를 때, 하늘은 그리운 사람과의 만남을 허락한다는 말의 무게와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는 날, 어제는 설날이었다.
한쪽에서는 새해를 맞이했다고 기뻐 즐거워했는가 하면, 또 다른 한쪽에서는 새해 첫날부터 사랑하는 어머니를 하늘로 다시 돌려 보내는 이별로 말미암아 슬퍼했던 어제였다.
지난해, 울산 무거성당에 계시는 아드님과 김해에 계시는 따님이 베르타 어머니의 종부성사를 청하면서, 나는 베르타 할머니와 처음으로 인사를 나누었다. 종부성사를 드리는 내내 눈을 꼬옥 감고 계셨던 할머니의 손을 잡았을 때, 따스한 온기가 나에게도 전해졌고, 아직 며칠은 더 사시겠구나 싶었다. 며칠이 몇 주가 되었고, 몇 달이 지나, 어제 음력 1월 1일에 할머니는 세상을 떠나셨다. 자녀들에게 당신 기일을 잊지 않게 하려고 애써 하느님께로 돌아갈 날을 설날로 정하셨나 보다 하는 생각이 어제 저녁 할머니의 선종 소식을 들었을 때 퍼뜩 들었다.
어제 2024년 설날에 베르타 할머니는 육체적으로 우리 곁을 영원히 떠나게 되었다. 생전에 그분이 우리에게 어떤 모습을 남겨 주셨든 간에, 그분도 우리모두와 마찬가지로 인간으로서 인생의 많은 역경과 여로 속에서, 힘들고 괴로울 때도 있었을 것이고 기쁨의 순간도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베르타 할머니는 그러한 모든 것을 뒤로하시고 하느님 품에 안기게 되었다.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는 태어나면서부터 하루하루 죽음을 향해 살아가는 존재다. 모든 사람은 죽음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고, 언젠가는 죽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 들이지 않을 수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고 죽음에 대해서 생각조차 하지 않으려고 한다. 죽음이라는 것은 모든 것을 삼켜 버리고, 죽음은 더 이상 이 세상의 삶을 영위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인에게 죽음은 더 이상 끝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삶의 완성이고, 하느님 나라에서 새롭게 시작되는 삶이 시작되는 관문이다.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도 이 세상에서 죽음을 맞이하셨다. 하느님의 아들, 사람이 되신 하느님이시기에 굳이 죽어야 할 이유가 없었음에도 예수께서는 당신의 죽음을 기꺼이 받아 들이셨다. 당신의 죽음을 받아들이신 결과로 이 지상에서 하셨던 당신의 구원 사업을 완성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 덕분에 이제 죽음은 모든 것을 삼켜 버리는 괴물 같은 무서운 것이 아니라, 죽음은 삶을 완성하는 것이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는 사람에게 죽음은 더 이상 공포의 대상이 아니게 되었다.
부활에 대한 희망은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죽음 조차 극복할 수 있는 용기를 갖게 한다. 이 희망은 죽음이라는 것이 영원한 이별이 아니며 끝도 아님을 깨닫게 한다. 죽음이라는 것은 그저, 영원한 나라에서 다시 만날 때까지 잠시 떨어져 있는 것에 불과한 것임을 깨닫게 한다. 그리고 이 희망은 잠시 떨어져 있는 그 순간에도 죽은 이와 산 자 사이에 서로서로 교류할 수 있는 신앙을 더욱 더 견고케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고백하는 성인들의 통공이며 산자와 죽은 자의 교류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부활과 영생에 대한 희망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우리의 애끊는 슬픔을 견딜 수 있게 한다.
사도신경을 욀 때마다, 우리는 모든 성인들의 통공을 믿는다는 신앙을 고백한다. 이 지상에서 누군가가 나와 너, 그리고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기도하듯, 저 천상에서도 성인성녀들이 나와 너, 그리고 우리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믿음이 성인들의 통공을 믿는다는 말이다. 이는 또한 우리들 신앙의 선조들이 지금의 우리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고 있음도 믿는다는 것이요, 이제 우리들 신앙의 선조들이 계신 저 하늘에서 조순이 베르타 할머니도 우리들 신앙의 선조들 반열에 들어 가면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고 계심을 믿는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그리고 베르타 할머니의 유가족 여러분,
이제 베르타 할머니는 하느님의 딸로서 영원한 생명이신 주님의 품에 안기게 된다. 생전에 할머니가 혹시라도 잘못한 것이 있으면 자비로이 용서하고, 할머니가 영원한 생명이신 주님의 품에서 평안한 안식을 누릴 수 있도록 간절히 청하고 기도하자. 부활하셔서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주님께서는 분명 우리의 이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실 것이다.
주님, 베르타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영원한 빛을 그에게 비추소서.
베르타와 죽은 모든 이들이 하느님의 자비하심으로 평안한 안식을 누리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