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 11일 연중 제6주일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태어나면서부터 장애를 지닌 경우도 있고, 원인이 설명되지 않는 육체적 정신적 고통들도 엄연히 존재한다. 어린 나이에 혹은 젊은 나이에 죽어 가는 생명들도 있다. 선의의 사람들이 짓밟히고 고통을 겪어야 하는 반면, 악의를 지닌 사람들이 높은 지위와 재물을 누리기도 한다. 정직하게 최선을 다 한 사람이 실패의 고배를 마시고, 크게 노력하지 않은 사람이 성공하는 경우들도 종종 본다. 가난하게 태어나서 뼈가 으스러지고, 죽도록 노력을 해도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를 손에 잡고 태어난 이들도 있다. 줄서기를 잘해서, 사람 대우 받는 정규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줄서기를 제대로 못해서 백일동안 쑥과 마늘만 먹으면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곰이나 호랑이보다도 더 못한 비정규직으로 생존하는 경우들도 있다.
 
예수님은 이런 불가사의한 일들, 불합리한 일들에 대한 합리적인 해답을 주는 분이 아니다. 특히, 불합리한 일들은 하느님이 만든 것이 아니라, 사람이 만들어낸 것이니, 더더욱 이러한 일들에 대해 예수님이 해답을 주실 수는 없다. 우리가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예수님은 불가사의한 일들, 불합리한 일들에 대한 원인을 밝히고, 그 원인을 제거하려고 하기 보다는, 오히려 병자를 고치고, 마귀 들렸다는 사람들에서 마귀를 쫓으셨던 분이다. 오늘 복음도 하늘이 내린 벌이라고 모두가 기피하는 나병을 고쳐서 그 환자를 사회에 복귀시키는 예수를 증언하고 있지 않는가?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도 병자를 고치고 마귀를 쫓으며 기쁜 소식을 전하라고 당부하셨지, 그 병자들이 어떤 원인으로 병을 가지게 되었는지, 왜 마귀에 들렸는지를 조사하고 다니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과학과 경제가 눈부신 발전을 이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호소한다. 주위를 돌아 보면, 너도 나도 상처 받은 사람들, 아픈 사람들 투성이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시대에는 ‘힐링’이라는 말이 대세가 되어 버렸다. 성당이나, 예배당도 힐링해 주는 곳이라고 떠들어 댄다. 하지만, 너도 나도 힐링을 원하니까, 힐링해 주는 곳이 돈 버는 시장, 힐링마켓이 되어 버렸고,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어중이 떠중이들도 힐링해준답시고, 힐링시장에 달려 들어서, 이제는 힐링 찾다가 킬링되는 세상이 되어 간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나병환자 한 사람을 치유해 주신다. 나병환자를 고쳐주신 예수께서 그 병자에게 « 누구에게든 아무 말도 하지 않도록 조심하시오 »라고 엄하게 명령하신다. 하지만, 나병을 앓았던 그 사람은 « 떠나가서 이 이야기를 널리 알리고 퍼뜨리기 시작한다. « 그리하여 예수께서는 더 이상 드러나게 고을로 들어가지 못하시고, 바깥 외딴 곳에 머무르셨다 »라고 오늘 복음은 증언한다.
 
마르코 복음서를 가만히 읽어보면, 예수께서는 마귀들에게는 입도 뻥긋 못하게 하셨고, 병자들에게도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분부하실 때가 많았다는 대목들이 자주 나온다. 예를 들면, 마르코 복음 7장에서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 에파타, 곧 열려라 »라고 말씀하시면서 치유해주신 후에도 «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그들에게 분부하셨다. 그러나 그렇게 분부하실수록 그들은 더욱 더 널리 알렸다 »고 전한다(마르7, 31-37). 마르코 복음 9장에 나오는 영광스러운 변모 사건에서도 예수께서는 사람의 아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날 때까지, 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분부하셨다(마르 9,9참조).
 
예수께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이다. 영광스러운 변모 사건에 대해서 말하지 말라고 한 것은 십자가의 수난을 앞두고 제자들의 오해를 막기 위해서였다. 병자들에게 병이 치유된 사실을 말하지 말라고 한 것은 예수를 병이나 고치는 기적가로 오해하는 일을 막기 위해서였다. 사람들이 예수를 떠돌이 약장수나 돌팔이 의사 정도로 생각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예수님은 그저 아픈 사람 치유해 주려고, 병든 사람 낫게 해주려고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다. 힐링은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리는 표징일 뿐, 힐링 자체가 예수님의 목적이 아닌 것이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콩고물이나 복 덩어리나 마음의 평안만을 바라다 보면, 하느님도 내 마음대로 주물러서 내 마음에 쏙 드는 짜가 하느님으로 만들어 버리기가 십상이고, 신앙도 내 편한 대로, 내 마음 가는 대로 믿어 버리기가 십상이다. 콩고물이나 복 덩어리나 마음의 평안은 예수의 일, 하느님의 일을 하다 보면 덤으로 얻게 되는 것이다. 힐링 또한 마찬가지다.
 
힐링만 찾다가 킬링 되는 세상, 참된 힐링은 하느님의 일을 실천하는 과정 속에서 온다. 오늘 복음은 나로 하여금 과연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곰곰이 생각하게 한다.

여러분에게 오늘 복음은 어떻게 다가오고 있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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