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 10일 토요일 설 대축일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곱고 고운 댕기도 내가 들이고, 새로 사온 신발도 내가 신어요.
설날이다. 하느님의 은총과 축복 속에서 올 한 해에도 늘 건강하시고 또 여러분의 가정과 우리 김해성당 공동체가 주님의 평화와 기쁨 누리는 가정과 공동체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새로운 마음과 다짐으로 2024년을 출발했던 1월 1일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오늘로 40일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여러분은 2024년을 잘 보내고 계시는가? 나의 경우, 벌써부터 내 마음에는 먼지가 쌓이기 시작했음을 솔직히 고백해야겠다. 게으름의 먼지, 귀찮이즘의 먼지, 무관심의 먼지 이런 것들이다. 이럴 즈음에, 나에게 다시금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설날이다.
그렇다. 오늘은 또 한번의 새로운 출발의 기회가 주어지는 참 소중한 명절 설날이다. 어떻게 보면, 설날이라고 해도, 어제와 다를 게 전혀 없는 똑같은 하루이기는 하다. 그러나 날 수 샐 줄 알기를 가르쳐 주신 하느님 덕분에 인간들은 대단히 오래 전부터 날짜의 기준을 정해놓고 한 해를 평안하게 지내기를 소망했다.
사실, 어제 섣달 그믐과 오늘 정월 초하루는 해가 뜨고 지는 똑같은 하루이지만 그 의미에 있어서는 전혀 다른 하루이다. 인간은 영원에서 영원에로 흐르는 변함 없는 시간에 눈금을 매겨 날 수(數)를 헤아리며 시간의 흐름을 가늠한다. 그리고 그 시간에 저마다의 의미를 부여하고 그 의미를 추구한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1년은 365일이고, 하루는 24시간이다. 그러나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수험생이 보내는 1년과, 무위도식無爲徒食하며 허송세월 하는 사람의 1년이 같은 값어치 일 수는 없다. 겉보기엔 같은 인생이지만 매일의 시간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며 찾느냐에 따라 너무나 다른 삶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오늘 제2독서에서 야고보 사도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 우리들은 내일 우리들의 생명이 어떻게 될지는 알지 못한다. »(야고 4,13) 시간은 모든 가능성이 다 담긴 가장 귀한 선물이다. 지금 이 순간,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새로운 한 해라는 시간의 시작을 선물하신다. 어제는 묵은해의 꼬리였지만, 오늘은 새해 첫날 모든 가능성과 기대와 꿈이, 마치 터져 나오는 석류알처럼 가득한, 희망의 새날 정월 초하루다. 우리에게 열린 새로운 한 해는 지난해의 모든 부족과 죄스러움을 기워 갚을 수 있는 속죄의 시간도 될 수 있으며, 새로운 계획과 꿈을 시험해 볼 수 있는 희망과 창조의 시간일 수도 있다. 이러한 은총의 시간을 허락하신 주님께 깊이 감사 드려야 하지 않겠나 싶다. 그러면, 이 귀한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첫째, « 내 인생, 내 멋대로 사는데 왜? »라는 자세는 잘못이다. 태어나고 죽는 것이 내 뜻에 달린 것이 아니라면,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어찌 내 마음대로 낭비해도 좋을 시간이겠는가? « 주님께서 원하시면 우리가 살아서 이런 저런 일을 할 것이다. »(야고 4,15)는 제2독서의 말씀대로 우리의 시간이 온전히 주님의 손안에 있음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된다. 사실, 우리의 존재가 주님께 달려있음을 잊을 때 경거망동(輕擧妄動)하는 법이다.
둘째, 나는 지금 « 어디쯤 가고 있는지 »를 스스로 헤아려야 한다. 이 시점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반성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오늘 복음의 말씀처럼 '주인이 돌아올 때를 기다리며 깨어 있는 종'(루가 18,12)의 자세로 사는 생활이다.
셋째, « 주님께서 그대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대를 지켜주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비추시고 그대에게 은혜를 베푸시리라. »(민수6,24-25)라는 오늘 제 1독서의 축복의 말씀처럼, 서로 은총을 빌어 주자. « 남 잘 되게 하소서 »하고 은총을 빌어주자.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주님께서 주신 또 한번의 새로운 시작의 기회라고 설날을 자리매김하면서, 우리들 모두가 주님 안에서, 주님과 함께 기쁨 가득한 한 해를 살아가기를 바란다. 설날 아침에 돈 별로 없는 신부로서 여러분에게 김종길이라는 시인이 쓴 « 설날 아침에 » 라는 시를 준비했다. 설 선물로 여겨주시기를 바란다. 각박한 현실에도 착하고 슬기롭게 살자는 시인의 마음에 공감이 가서 여러분과 함께 설날에 이 시를 나누고 싶다.
설날 아침에
김종길
매양 추위 속에 해는 가고 또 오는 것이지만
새해는 그런대로 따스하게 맞을 일이다.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가 숨쉬고 파릇한 미나리 싹이
봄날을 꿈꾸듯 새해는 참고 꿈도 좀 가지고 맞을 일이다.
오늘 아침 따듯한 한 잔 술과 한 그릇 국을
앞에 하였거든 그것만으로 푸지고 고마운 것이라 생각하라.
세상은 험난하고 각박하다지만 그러나 세상은 살 만한 곳.
한 살 나이를 더한 만큼 좀 더 착하고 슬기로울 것을 생각하라.
아무리 매운 추위 속에 한 해가 가고 또 올지라도
어린것들 잇몸에 돋아나는 고운 이빨을 보듯 새해는 그렇게 맞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