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 8일 연중 제5주간 목요일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유태인들에게는 죄인들의 땅이라고 낙인이 찍힌 이방인의 땅, 하느님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라고 여겨지던 띠로를 지나가시던 길에 예수님은 한 이방인 여자를 만나게 된다. 이방인들의 지역에서 예수님은 물의를 일으키지 않고 조용히 잠시라도 머물고 싶으셨던 것 같다. 마르코 복음사가는 이러한 예수님의 마음을 오늘 복음의 첫 구절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 « 아무에게도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으셨다 »(마르 7,24).
 
             조용히 며칠, 아니 몇 시간만이라도 지내고 싶으셨지만, 사람들은 그분을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오늘 복음에는 예수님의 투정 섞인 볼멘소리가 2000년이 지난 지금 이 순간까지도 생생하게 들릴 정도로 여과 없이 적혀 있다 : «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에게, ‘먼저 자녀들을 배불리 먹여야 하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소’하고 말씀하셨다 »(마르 7,27).
 
이 말씀을 듣고 마귀 들린 딸을 둔 시리아 페니키아 출신의 여인은 «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라고 답했다. 이 대답은 예수님의 눈을 번쩍 뜨게 하고, 예수님의 귀를 활짝 열게 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은총과 구원이 유대인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신앙을 가진 이 여인의 믿음은, 비록 마귀 들린 딸이 하루빨리 치유되기를 바라는 절박함과 간절함 때문에 생겨난 것이었겠지만, 그의 믿음은 자기 자식만 잘되기를 바라는, 조금 더 범위를 넓혀서 자신의 가정만, 자신이 속한 공동체만 잘 되기를 바라는 그런 옹졸하고, 이기적인 믿음이 아니었다. «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라는 이 여인의 말은 모든 사람들을 향한 하느님의 자비와 구원을 불러들인 말이었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살아가면서,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있다.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없을 때, 어느 쪽을 잡아야 할 것인가를 놓고,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이라는 것이 있다. 그런 순간에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 기준이라는 것이 물질적인 것일 수도 있고, 다른 사람에게는 정신적인 것일 수도 있다. 오늘 우리가 들었던 복음은 선택과 결정의 순간에 신앙인은 무엇을 기준으로 선택하고, 결정을 내려야 하는지에 관한 가르침을 알려준다.
 
             물의를 일으키지 않고, 조용히 별탈 없이 지낸다는 것, 참으로 거부하기 힘든 유혹이다. 이 유혹을 정면으로 되 받아친 분들 가운데 두 분을 나는 알고 있다. 첫 번째 분은 전 제주교구장 강우일 베드로 주교님이다. 제주 해군기지 문제와 관련해서,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이 서로 대치하고 있었을 때, 교회는 마치 전통처럼 중립을 지키고, 중재하는 쪽을 선택해서, 처신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아주 지혜로워 보이고, 그렇게 하면, 교회는 찬성하는 쪽으로부터도, 반대하는 쪽으로부터도 욕도 얻어 먹지 않고, 손가락질도 당하지 않고, 말 그대로 물의를 일으키지 않고, 조용히 처신할 수 있었다. 그러나 주교님은 그러지 않았다. 제주 해군 기지 건설 반대의 입장에 서신 것이다. 그것도 맨 앞에 말이다.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함으로써, 가난해지고, 소외 받게 되고, 버림받게 된 강정의 주민들과 평화 활동가들과 함께 고통을 겪는 길을 걷겠다고 선택하고, 결정하신 것이었다.
 
             또 다른 한 분은 프란치스코 교황님이다. 2014년 8월 18일, 한국을 떠나시면서, 기내에서 하신 말씀, « 모든 인간적인 고통 앞에 중립을 지킬 수는 없습니다 »라는 이 말씀으로 교황님은 물의를 일으키지 않고, 별탈 없이 지내고 싶은 유혹을 쫓아버리셨다.
 
             오늘 복음을 읽고 묵상하면서, 하루 종일 내내 나 자신에게 이런 물음을 던져 보았다 : ‘나도 오늘 복음의 그 여인처럼, 강우일 주교님처럼, 프란치스코 교황님처럼, 그렇게 살아 갈 수 있을까 ?’ 오늘 복음은 나에게 많은 생각들을 하게 한다. 참으로 거부하기 힘든 유혹들 앞에서, 늘 머리를 쥐어짜고 있는 나에게 오늘 복음은 마치 죽비처럼 다가온다.
여러분에게 오늘 복음은 어떻게 다가오고 있는가?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64 2024년 1월 21일 연중 제3주일 미사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4.01.26 10
363 2024년 1월 22일 연중 제3주간 월요일 미사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4.01.26 10
362 2024년 1월 23일 연중 제3주간 화요일 미사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4.01.26 5
361 2024년 1월 25일 목요일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 미사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4.01.26 15
360 2024년 1월 26일 금요일 성 티모테오와 성 티토 주교 기념일 미사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4.01.31 3
359 2024년 1월 28일 연중 제4주일 미사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4.01.31 10
358 2024년 1월 29일 연중 제4주간 월요일 미사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4.01.31 7
357 2024년 1월 30일 연중 제4주간 화요일 미사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4.01.31 32
356 2024년 1월 31일 수요일 성 요한 보스코 사제 기념일 미사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4.01.31 14
355 2024년 2월 1일 연중 제4주간 목요일 미사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4.02.01 19
354 2024년 2월 2일 금요일 주님 봉헌 축일 미사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4.02.02 18
353 2024년 2월 4일 연중 제5주일 미사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4.02.05 18
352 2024년 2월 5일 월요일 성녀 아가타 동정 순교자 기념일 미사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4.02.06 7
351 2024년 2월 6일 화요일 성 바오로 미키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미사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4.02.06 11
350 2024년 2월 7일 연중 제5주간 수요일 미사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4.02.06 14
» 2024년 2월 8일 연중 제5주간 목요일 미사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4.02.08 20
348 2024년 2월 9일 연중 제5주간 금요일 미사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4.02.15 8
347 2024년 2월 10일 토요일 설 대축일 미사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4.02.15 34
346 2024년 2월 11일 연중 제6주일 미사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4.02.15 8
345 2024년 2월 11일 조순이 베르타 할머니 장례미사 강론 김해_홍보분과베네딕도 2024.02.15 44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21 Next
/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