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31일 수요일 성 요한 보스코 사제 기념일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나자렛 사람들은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 보지 못했다. 메시아라고 소문이 난 예수라는 청년이 한낯 자기 동네 출신이고, 이미 자기 동네에서는 별 볼 일 없는 목수 밖에 안되었던 인물이라는 자신들의 편견 때문이었다.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고, 40일간 광야에서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넘기면서 예수께서는 당신의 길을 한 걸음 한 걸음 걸으셨지만, 사람들은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기까지의 과정에서 겪었을 예수님의 힘듦과 고뇌의 땀과 눈물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그저, 예수님의 말씀과 기적들이 신기할 뿐이고, 예수의 그러한 능력들이 그들에게는 못마땅할 뿐이었다.
 
이 모든 것들을 간파하신 예수께서는 당신의 고향에서 크게 실망하셨고 낙담하셨다. 그리고 «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는 말씀과 함께 몇몇 병자들에 손을 얹어서 병을 고쳐 주시는 것밖에는 아무런 기적도 일으키지 않으셨다.
 
이러한 일들이 비단 2000년 전에만 일어날까? 이 나라 이 땅에서도 일어난다. 언제부턴가 이 나라, 이 땅은 ‘연고’와 ‘서열화’로 출세해서 한몫 챙기기가 행복처럼 여겨지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어느 지역 출신인지, 어느 집안 출신인지, 어느 학교 출신인지에 따라 잘나가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구분한다. 그렇게 공공연히 인정되는 줄을 잡는 것이 출세의 비결이라는 확신을 갖고 지금도 열심히 사돈에 팔촌, 아니면 이웃 사촌이라도 없는지 찾아보는 분들이 이 나라 이 땅에는 참으로 많이 계신다.
 
좋은 학교의 기준이라는 것이 학생들의 능력과 학생들의 취향, 그리고 무엇보다도 학생들의 인권을 존중하면서, 어떤 교육을 시키느냐가 아니라, 상급학교의 진학률과 취직률이 좋은 학교냐 아니냐를 가름하는 사회, 그래서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며’ 탄탄한 출세 가도를 만드는 것이 모든 학교의 졸업생들과 재학생들, 그리고 그 학교의 교육자들에게 주어지는 지상 과업이 되어 버리는 사회, 스펙쌓기만이 살 길이라면서 무한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가 이 나라, 이 땅의 한 모습이다.
 
이러한 사회에서 누군가가 이 줄 저 줄 다 대고, 스펙 열심히 쌓고, 돈 많은 부모나 든든한 스폰서를 구해서, 나름으로 소위 ‘출세’를 하면, 썩은 음식에 파리가 꼬이듯이 여러 사람이 달라 붙는다. 콩고물이라도, 팥고물이라도 얻어 먹을 요량으로, 혹은 줄을 갈아 타려고 한다. 일순간 그는 영웅이 되고, 그의 성공담은 미화되어 신화나 전설이 되어 버린다. 금의환향이라는 것이 사람들의 부러움의 대상으로만 남는 것이 아니라, 쟁취해야만 하는 것이 되어 버리는 사회에서는 그 과정이 윤리적이냐, 아니냐, 정정당당하냐, 아니냐는 문제시되지 않는다. 오직 결과만이 중요할 뿐이다. 그러나 금의환향은 며칠 가지 못한다. 사람들이 개떼같이 달려 들어, 그를 폄하하기 시작하고, 구설수에 오르기 시작하면서 그는 추락하기 시작한다. 무한 경쟁의 사회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예언자의 말이 개 짖는 소리보다 못할 때가 많다. 예언자는 자기의 말을 하는 사람도, 청중의 호응을 받으려고 진실을 외면하고 야합하는 사람도 아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하느님의 사람이다. 그런 예언자가 이 사회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고 말할 때, 그 말에 공감하고, 고개를 끄덕이기 보다는, « 그래서, 네가 이 사회를 바꿀 힘이라도 있나? 힘도 없는 게 나대지 마라. 모난 돌이 정 맞는 법이다 »라는 말과 손가락질과 비웃음이 판을 친다. 예언자는 고향에서 존경 받지 못할 뿐 아니라, 이 나라, 이 땅의 많은 곳들에서 존경을 받지 못한다. 이는 하느님이 이 세상에서 고통을 겪고 있고, 무시 당하고 있고, 손가락질 당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어쩌다가 이 모양 이 꼬라지가 되어 버렸는가 하며, 한탄하고 멍하니 하늘만 바라 보는 것은 이 세상의 악에 동조하는 것과 하등 다를 바가 없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보다는 세속적인 욕망을 더 많이 따르고자 하는 이 세상을 향해서,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기보다 폭력과 보복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어리석은 세상을 향해서, « 그건 아니잖아 »라고 외쳐야 한다. 그리고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이들, 하느님의 사람, 예언자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대세를 따르고, 시류를 따라서 사는 것이 늘 올바른 것은 아니다. 때로는 올바르지 않은 세상에 « 그건 아니잖아 »라고 외치는 이들, 온몸으로 항거하는 시대의 예언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 목소리를 따라 살아보겠다고 두 주먹 불끈 쥐어야 할 때도 있다. 지금이 바로 그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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