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28일 연중 제4주일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신부가 되려고 신학교에 입학하고 김해성당 주임신부로 살고 있는 지금까지 32년 조금 넘어가는 세월 동안 나에게는 잊히지 않는 질문 세 개가 있다. 첫째 질문은 « 학사님도 엑소시스트 할 줄 아세요 ? », 둘째 질문은 « 신부님, 복음이 뭐요 ? » 그리고 셋째 질문은 « 하느님 도대체 왜 우리 딸을 데리고 가셨나요 ? »
이 세 질문은 각각 오늘 연중 제4주일 복음과 다음주 주일인 연중 제5주일 복음, 그리고 그 다음주인 연중 제6주일 복음과 연관되어 있다. 3주일치의 강론, 3부작을 기획하면서 강론 준비를 해야겠다고 알뜰하게 마음은 먹긴 했지만, 3부작 강론을 실제로 쓰는 것과 기획하는 것은 분명 다른 일인 것 같다. 강론 준비하면서 얼마나 머리를 쥐어 뜯었는지 모른다. 아무튼 일단 해보자 하는 심정으로 오늘 연중 제4주일 복음과 « 학사님도 엑소시스트 할 줄 아세요 ? »라는 내 인생의 첫째 질문을 연관 지어 보았다.
방학이 되면 모든 신학생들은 신학교에서 자신의 출신본당으로 파견된다. 1994년,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신학교 3학년 여름방학 무렵 당시 중1 학생 하나의 당황스런 질문 하나를 받았다. 그 아이의 이름을 기억할 정도로 나에게는 당황스런 질문이었다. 1994년, 당시 14살이었던 상민이는 중1이 되자마자 예비 신학생 모임에 나갔다. 그런데, 여름방학이 되면서 더 이상 예신 모임에 못나가겠다고 했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 엑소시스트 »라는 영화에서 어떤 신부님이 악마에게 사로잡혀 마귀가 되는 걸 보고는, 제대로 마귀를 쫓아내고 물리치지 못하면 도리어 마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겁이 났다고 했다. 그리고는 대뜸 « 학사님도 엑소시스트 할 줄 아세요 ? »라고 물었다. 나는 « 할 줄 몰라. 근데, 주교님 허락 받아야 할 수 있고, 신부만 할 수 있다 »라고 대답해주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1673항은 구마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공식 입장을 다루고 있다. « 교회가 어떤 사람이나 물건이 마귀의 세력으로부터 보호되고 마귀의 지배력에서 벗어나도록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공적인 권위를 가지고 청하는 것을 구마驅魔라고 한다. 예수님께서 이를 행하셨으며 교회는 마귀를 쫓아내는 권능과 의무를 예수님께 받았다. 세례를 거행할 때 간단한 형식의 구마를 행한다. 장엄구마magnus exorcismus라고 하는 마귀 쫓는 예식은 주교의 허가를 받아서 사제만이 행할 수 있으며, 교회에서 정한 규칙을 정확하게 지키면서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구마는 마귀를 쫓아내거나 마귀의 지배력에서 구해 내는 것이 목적이며, 예수님께서 교회에 주신 영적 권한으로 행하는 것이다. 질병, 특히 정신 질환은 마귀 들린 것과는 전혀 다르며, 의학이 치료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마를 행하기 전에 질병이 아니라 마귀 들린 것임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
오늘 복음은 안식일에 카파르나움의 한 회당에서 일어난 예수님의 치유 사건을 증언한다. 예수님 시대에 더러운 영이 들렸다는 것은 정신 질환자이거나, 마귀 들린 사람이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런데, 거룩한 안식일에 그것도 거룩한 회당에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들어올 수 있었을까? 못 들어온다. 그런데 왜 마르코 복음사가는 이 이름 모를 한 사람을 두고,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라고 했을까?
더러운 영이 들렸다는 사람은 예수님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예수님이 나자렛 출신이라는 것도 알고 있고,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는 예수님의 신원까지도 알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가 예수님을 받아 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예수님께 이렇게 말한다: «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
타인에게 마음이 열려 있지 않고 꽁꽁 닫혀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선의나 따뜻한 말씨, 혹은 따뜻한 행동이나 몸짓을 곧잘 무시한다. 그리고는 꼭 한두 마디의 말을 덧붙인다 : « 당신이 뭔데 ? 나와 당신이 뭔 상관이 있는데? », «오지랖도 유분수지 ». 사랑 받는 것에 부담을 느끼거나, 빚을 진다고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간다는 것이다. «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 이 말은 분명히 예수님을 거부하는 말이다. 게다가 예수께서 그에게 함구령을 내리고 나가라고 꾸짖으시자 경련을 일으키고 큰 소리를 질러댔다는 것은 함구령을 내리시는 예수께 길길이 날뛰며 발악을 했다는 말이다.
결국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알면서도 받아들이지 않고, 심지어 강력하게 거부했던 사람이었기에, 마르코 복음사가는 그를 두고 «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 »이라고 진단을 했다.
더러운 영이 들렸다는 사람에게 예수께서는 «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라는 단 두 문장의 말씀을 내리신다. 그런데 예수님의 치유를 두고 놀라운 기적이라고 하거나 전대미문의 기적이라고 하지 않고 오늘 복음의 끄트머리에서 사람들은 « 새롭고 권위 있는 가르침 »이라고 했다. 이는 구마가 가르침이고 가르침의 한 형태가 구마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구마행위는 바로 예수님의 가르침, 곧 하느님 나라의 실현, 하느님과 함께 하는 삶에 관한 가르침이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과학의 시대에 더러운 영을 쫓아내는 것, 구마, 엑소시즘을 말한다는 것이 어불성설語不成說처럼 보인다. 그러나 우리 시대에도 분명 더러운 영들은 존재한다. 사람을 못살게 굴고 사랑을 거부하며, 악을 조장하거나 악에 협력하며, 제 잇속만 차리는 짓거리들은 분명 더러운 영들의 짓거리다. 그래서 세상의 악에 저항하고, 세상의 악을 물리치려는 행위 역시 구마의 한 모습이다.
그리고 오늘 복음은 아는 것과 믿는 것은 분명 다르다는 점을 명백하게 알려준다. 예수님을 안다고 해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식이 증대된다고 신앙이 커지는 것은 아니다.
예수께서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고 광야에서 40일간 단식하며 지내셨을 때, 유혹하는 자가 와서 성경구절을 들먹이며 예수님께 깐족거리던 장면을 기억하실 것이다. 마귀새끼도 성경구절을 입에 올릴 수 있고,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를 안다. 그러나 그분을 믿는다는 것은 그분의 가르침, 곧 경천애인敬天愛人을 삶 속에서 실천하느냐, 하지 않느냐로 판가름난다.
신학박사 학위 몇 개를 가지고 있는 사람과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묵주기도 열심히 바치는 것밖에 없는 할머니, 이 두 사람 가운데 누가 과연 더 신앙인답다고 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판단은 오직 하느님밖에 할 수 없다. 그렇지만 신학 박사 학위 몇 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경천애인의 삶을 살지 아니한다면, 그는 참된 신앙인은 못 된다. 할 줄 아는 것이 묵주기도 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사람을 사랑하고, 하늘을 경외할 줄 안다면, 그는 참신앙인이다.
오늘 복음은 구마 이야기이긴 하지만, 우리 신앙인들에게 신앙이란 지식 쌓기가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느님의 일, 경천애인의 삶을 살려는 몸부림임을 깨닫게 한다. 오늘 복음은 나에게 이렇게 다가온다.
여러분에게 오늘 복음은 어떻게 다가오고 있는가?
여러분에게 오늘 복음은 어떻게 다가오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