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 2428호 2017.04.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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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상진 요한 |
복자 유항검의 딸 섬이를 아시나요
김상진 요한 / 언론인 daedan57@hanmail.net
103위 성인들과 124위 복자들의 삶을 묵상할 때마다 남은 순교자들의 가족은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것이 늘 궁금했다.
최근 경남 거제의 유섬이(1793∼1863) 무덤을 순례하면서 순교자들의 유가족들도 큰 고통을 겪었다는 사실을 알고 많이 울었다.
유섬이는 복자 유항검 아우구스티노(1756∼1801)의 딸이다. 섬이는 아홉 살 때 신유박해로 부모와 오빠 두 명, 큰 올케 등 집안의 다섯 분이 순교한 뒤 전남 초남이 마을에서 거제로 유배당했다. 오랏줄에 묶여 피로 얼룩진 고향을 떠나 거제부 관부의 노비로 끌려 온 것이다. 당시 조정은 섬이의 동생 일석(6)은 흑산도로, 일문(3)은 전라도 강진의 신지도 관비로 보냈다. 섬이의 두 동생에 대한 이야기는 전해지지 않는다.
섬이의 큰 오빠 유중철(요한)과 올케 이순이(루갈다)는‘동정부부’로 유명하다. 아버지 유항검은 대지주로 천주교가 호남 지역에 전파되는데 많은 재산을 기부했다. 유항검은 주문모 신부가 호남 지역을 돌아볼 때 자신의 집에 머물게 하면서 전교에 앞장섰다. 이런 집안의 딸답게 섬이의 거제도 유배 생활은 남달랐다. 순조 1년(1801년,신유년) 10월 거제부 관아에 끌려온 섬이는 홀로 사는 노파의 수양딸로 보내진다. 사대부 집안 어린이를 차마 관비로 부리지 못한 것이다.
섬이는 용모가 단아하고 품위가 있어 주변에서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고 한다. 나이가 들어 중매가 들어오자 섬이는 동정녀로 살기로 결심한다. 양어머니에게 부탁하여 흙집을 지어 그 속에서 생활하며 양모의 삯 바느질을 도왔다. 섬이는 양모가 숨진 후 40살쯤 되어서야 흙집을 나왔다. 동정과 신앙을 지키며 고고하게 살다가 71세에 하느님 품에 들었다. 항상 긴 칼을 차고 다녀 아무도 범접하지 못했다고 한다.
섬이의 거룩한 삶은 당시 거제도호부사 하겸락(1825∼1904)이 지은 사헌집(思軒集) 부거제(附巨濟)편에 일부가 기록돼 있다.
하 부사는 섬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뒤 거룩한 삶에 감명을 받아 묘지를 마련한 뒤 제문을 짓고 아전을 보내 장례를 치러줬다. 비석에‘칠십일세유처녀지묘(七十一歲柳處女支墓)’라고 새기도록 했다. 부사가 죽은 관비의 장례를 치러준 것은 당시 관습상 있을 수 없는 파격이었다. 그만큼 섬이의 삶이 거룩했다는 증거인 것이다.
섬이의 존재가 알려진 것은 불과 3년 전이다. 수원교회사연구소 하성래 고문이 조상들의 문집을 정리하다가 조상인 하겸락 부사의 기록에서 섬이를 발견하고 교회에 알린 것이 시작이다. 현재 섬이의 무덤은 거제시 거제면 내간리 송곡마을에 있다. 최근 순례자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올해 사순절에는 200여 년 전 아홉 살 어린이가 지녔던 신심보다 못한 나의 신앙을 되돌아보며 십자가의 길을 묵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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