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22일 연중 제3주간 월요일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많은 신자들이 불편함을 호소하거나 안타까움 혹은 아쉬움을 드러내는 신부들의 강론의 공통된 특징은 한쪽으로 편향적이라는 데에 있다. 그러나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중립中立을 지킨다는 것은 세상일에 대해서 무관심無關心하다는 것을 반증함과 동시에, 이미 한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중립을 지킨다는 것은 운동장을 기울게 만든 사람들, 곧 가해자加害者 쪽에 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미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지난 2014년 8월 한국을 방문하시고 바티칸으로 돌아가시는 비행기 안에서 가졌던 기자회견에서 말씀하셨듯, 인간의 고통 앞에 중립은 있을 수 없다. 고통을 받는 사람들 편에 서든지, 아니면 고통을 주는 사람들 편에 서든지 양자택일兩者擇一을 할 수 밖에 없다. 중립을 지킨다고 어느 한쪽에도 치우치지 않는다는 것은 고통을 주는 쪽에 무언無言의 지지를 보낸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인 » 백성들이 사방 팔방이 막혀 하늘만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 것에 어찌 가엾은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와 함께 동시대를 살아 가는 사람들이 그렇게 힘들게 살아가면서도, ‘사는 게 뭐 이런 것이지, 별 수 있나?’라고 한숨 쉴 때에, 어떻게 눈물이 핑 돌지 않을 수 있겠는가? 백성을 힘들게 하는 인두껍을 쓴 것들에게 어떻게 눈을 흘기지 않을 수 있으며, 분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내 새끼 어디 가서 맞고 들어오면, 잘 맞았다고 고소하다고 할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옳고 그름은 따져야 하지만, 내 새끼 맞은 것은 분명 분한 일 아니겠는가? 양들이 힘겨워 하는데, 강론에서 그저 좋은 말씀 한 말씀이나 해대는 것은 직무유기를 넘어서서, 해서는 안될 짓들 아니겠는가? 힘겨워 하는 양들을 무시하는 짓이고, 선한 마음과 선한 의지로 묵주알을 굴리고 있는 그 양들을 배반하는 짓이며, 그 양들을 죽음으로 도로 내치는 짓거리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부가 강론 때에 현실의 참담함, 그리고 그러한 현실을 만드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돈에 눈멀고, 권력에 눈먼 이들의 잘못과 비인간성을 고발할라치면 적지 않은 신자들은 눈살을 찌푸린다. 신부가 가난하고 소외되고 힘없는 이들을 위해, 후원회를 만들거나, 오순절 평화의 마을, 꽃동네 같은 그럴싸한 곳을 만들면, 사람들로부터 칭찬도 받고, 나라로부터 표창도 받고, 훈장도 받는다. 하지만, 그 가난과 소외와 힘없음의 근본적인 이유가 다름아닌 사회 제도의 모순에 놓여 있음을 발견하고, 그 사회 제도의 모순에 대해 비판하고, 세상이 바뀌어야 한다고 외치고, 가난하고 소외되고 힘없는 이들과 함께 연대하고 그들과 함께 고통을 당하려고 하면, 이 나라에서는 « 정치사제, 빨갱이 신부, 종북 구현 사제단 »이라고 욕을 얻어먹는다. 마치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서 저 짓거리를 한다고 욕을 얻어먹는 것처럼 말이다.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의 행동을 보고 저 인간은 마귀들의 대장인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서 저런다고 했다. 자기네들의 눈에는 그렇게 밖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2천년 전 기득권에 빌붙어 살던 바리사이들, 율법학자들, 사두가이들, 당시 사회악의 부역자들, 협조자들, 당사자들에 예수께서 저항하셨던 그 시대와 다를 바가 별로 없는 이 나라 이 땅이라는 삶의 자리에서 오늘 복음이 읽히고 있다. 그리고 나와는 무관할 것이라고 안도하고 있지만, 사실은 힘에 겨워하는 양들이 바로 내가 될지도 모를 정도로, 그 어느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불특정 다수의 고통의 시대를 우리가 지금 살아 가고 있고, 시대의 어두움이 지금의 우리들 주변에 너무나도 깊숙이 깔려 있다. 이런 상황들에 침묵한다면, 도대체 사제의 존재 이유가 무엇일까 ?
오늘 복음은 나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특히 양들을 위한 봉사의 삶을 살아야 하는 사제의 존재 이유에 대해 깊이 묵상하게 한다.
여러분에게 오늘 복음은 어떻게 다가오고 있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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