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19일 연중 제2주간 금요일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성경에서 ‘산’이라는 장소는 하느님과 가까이 할 수 있는 곳, 하느님의 뜻에 가까이 다가 설 수 있는 곳, 하느님을 만나는 곳이다. 모세가 불타는 떨기 나무를 본 곳도 산이었고, 야훼 하느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은 곳도 산이었다. 이러한 의미를 가진 ‘산’에서 예수께서는 당신 마음에 두셨던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 하나 부르시고, 당신의 제자로 선택하셨다.
예수께서 열두 사도를 뽑으신 이유는 첫째, 예수님과 함께 있기 위해서였다. 둘째, 하느님 나라의 복음 선포를 위한 권한을 주시기 위해서였다. 하느님 나라, 곧 하느님이 오셨다는 복음 선포를 위해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권한이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이다. 조금 어려운 말로, 예수의 현존 속에 머무름이다.
사도 바오로께서는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 번째 편지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와 천사의 언어로 말한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요란한 징이나 소란스러운 꽹과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고 모든 신비와 모든 지식을 깨닫고 산을 옮길 수 있는 큰 믿음이 있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가 모든 재산을 나누어 주고 내 몸까지 자랑스레 넘겨준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1고린 13장). 바오로 사도의 이 말씀에서 사랑이라는 말 대신에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을 넣어 보면, 오늘 복음이 우리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가 정확히 밝혀진다. 하느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 제 아무리 잘 나고, 제 아무리 똑똑하고, 제 아무리 능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가 해야 할 맨 첫 번째 일은 바로 주님의 현존 안에 머무르는 일이다.
예수께서 당신 제자들로 뽑으신 사람들을 세상의 잣대를 놓고 보면, 참으로 엉성하기 짝이 없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견원지간(犬猿之間)으로 지내는 사람들도 있다. 베드로와 안드레아, 야고보와 요한이 갈릴래아의 어부들이었고, 마태오가 세리 레위였고, 시몬이 혁명당원이었다는 것 외에 다른 사도들에 대해서는 정확한 신원을 알 수도 없다. 레위 마태오는 로마 제국에 협력하여 백성들의 세금을 걷어 들였던 세리였던 것에 반해, 혁명당원 시몬은 로마 제국의 식민 통치에 반기를 들었던 독립 운동가였다. 한 사람은 로마 제국의 협력자요 앞잡이였고, 또 다른 한 사람은 로마 제국에 대적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이 둘은 서로 조화될 수 없는 부류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는 이들을 모두 다 사도로 삼으셨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어제부터 그리스도교 일치주간을 보내고 있다. 매년 1월 18일부터 1월 25일 바오로 사도의 회심축일까지 일주일간 모든 그리스도교 교회는 일치주간을 지낸다. 그리스도의 교회에 속한 수많은 사람들이 제각기 생각하는 바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고, 또 행동하는 바가 서로 다를 수도 있다. 정치적인 성향이 다를 수도 있고, 선호하는 사람들이나 생각들, 영성들이 다를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르다는 것이 틀리다는 것은 분명 아니다.
교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이 제각각 생각하는 바가 다를지라도 오직 하나될 수 있는 요건은 바로 다름 아닌 예수의 현존 안에 머무르는 것이다. 서로 다른 사상을 가졌다고, 틀렸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예수께서 열두 사도들을 뽑으셨을 때에, 다양성을 염두에 두셨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거나, 아니면, 예수는 뒷전이고, 그저 종교라는 제도 안에서 세속적인 이득을 취하려는 사람들에 불과하다. 생각이 다르다고, 사상이 다르다고 분열될 수는 없다. 다름이 존중되면서도, 오직 한 분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는 이들은 자신들의 신앙 생활에서 더욱 풍요로운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오늘 복음은 나에게 이렇게 다가온다.
여러분에게 오늘 복음은 어떻게 다가오고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