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10일 연중 제1주간 수요일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예수님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온 분이셨다. 그러나 100% 섬기기만 하러 온 분만은 아니다. 때로는 당신도 섬김을 받으셨다. 바로 오늘 복음이 이를 증언한다.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의 장모로부터 대접을 받으신 때는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광야로 나갔다가 돌아와서 제자들을 모으는 것으로 공생활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다.
때로는 바리사이들로부터 식사 초대를 받기도 하셨고, 자캐오의 집에 초대를 받아 대접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제자들과 늘 동고동락하셨던 예수님의 공생활 3년 중에는 섬김을 받은 때보다, 섬긴 때가 더 많았다. «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습니다(루가 9,58) »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여우들의 굴, 하늘의 새들의 보금자리, 사람이 머리를 기댈 곳은 모두 안전과 편안, 대접을 연상케 하는 구체적인 장소, 곧 집을 뜻한다.

 
        나에게도 시몬 베드로의 장모의 집과 같은 곳이 있다. 그곳은 바로 나의 출신 본당이다. 노령에도 불구하고, 나를 위해 기도해주고, 꼬깃꼬깃해진 돈들을 모아서 용돈으로 쓰라며, 담배값이라도 하라고 나에게 은근 슬쩍 쥐어주거나 넌지시 건네주었던 내 출신본당의 할아버지들과 할머니들이, 좋은 사제되라고 격려해주고, 때로는 신부될 놈이 그런 생각이나 하다니, 그런 말을 하다니, 그런 행동을 하다니 하면서 나를 꾸중하시던 내 출신본당의 아저씨들, 아주머니들이 모두 나에게는 시몬 베드로의 장모였다. 그들 덕분에 지금의 내가 존재하고 있다.

 
        우리들 신앙인에게도 예수에게 있어서의 시몬 베드로의 장모의 집과 같은 집이 있다. 그곳은 바로 다름 아닌 본당이다. 시몬 베드로의 장모 역할을 하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은 바로 다름 아닌, 저와 수녀님들이다. 때때로 그런 역할에 충실하지 못할 때도 있는데, 그럴 때에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을 만큼 창피하고, 너무나도 송구스럽고 미안스럽다. 그럼에도 감히 여러분들에게 간곡히 몇 가지를 부탁하고 싶다.
첫째, 저와 같은 성직자들이, 수녀님들이, 수사님들이 이 시대 이 나라 이 땅에서의 시몬 베드로의 장모와 같은 역할에 충실할 수 있도록, 양들을 섬기며 살아가는 사람들로 살아갈 수 있도록, 특별히 가난하고 소외되고, 버림받은 이들을 위해 자신의 체면이나, 사회적인 지위, 종교적인 지위 따위 신경 쓰지 아니하고, 헐레벌떡 그들에게 달려가 그들을 와락 끌어 안을 수 있도록, 때로는 그들을 나무라기도 하고, 꾸중하기도 하고, 달래기도 하면서, 기도해 주시기를 바란다.

 
        둘째, 우리네 삶에 있어서 시몬 베드로의 장모집과도 같은 곳, 쉼이 있고, 따스함이 있고, 위로와 위안이 있고, 칭찬과 격려가 있고, 나눔이 있고, 사랑이 있는 곳, 그런 곳을 먼데서 찾지 말자. 내가 먼저 너에게 그런 곳이 되어 주자. 내가 먼저 너에게 쉼이 되어주고, 따스함이 되어주고, 위로와 위안이 되어주자. 먼저 칭찬해주고, 먼저 격려해주며, 먼저 손을 내밀어 나누어주고, 먼저 사랑하자. 내가 먼저 시몬 베드로의 장모집이 되어주자. 찾아 가기 힘들다면, 적어도 냉냉한 마음이나, 적개심이라도 품지 말자. 덕지덕지 빨간 딱지 붙이는 짓거리는 더더욱 하지 말자.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 연탄 한 장 »이라는 따스한 시가 유난히 나를 부끄럽게 하는 오늘이다. 시몬 베드로의 장모의 집이 되는 것이나, 연탄 한 장 되는 것이나 같은 것인데, 그러지 못하는 내 자신이 참 부끄러운 오늘이다. 오늘 하루 나 아닌 다른 이에게 시몬 장모의 집과도 같은 곳이 되어 주는 것은 어떠한가 ? 연탄 한 장 되어 주는 것은 어떠한가 ?

 
연탄 한장
 
                                                                         안 도 현

 
       또 다른 말도 많긴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팔도 거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연탄 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 먹으면서도 몰랐네

       온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히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봄날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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