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7일 주님 공현 대축일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동방박사는 몇 사람이었나 ? 하고 물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의 자동으로 세 사람이라고 답한다. 그리고 적어도 1970년대나 그 이전에 세례를 받으신 분들은 동방박사들의 이름이 카스파르, 발타사르, 멜키오르라고 알고 있다. 교리문답에 그렇게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방박사가 세 사람이라고 명확하게 밝힌 곳은 성경 그 어디에도 없다. 동방박사가 무엇 하는 사람인지, 그들이 몇 명이었는지, 베들레헴을 방문하고는 어디로 갔는지, 예수를 뵈옵고 나서 후에 신앙인이 되었는지, 어느 것 하나도 말해 주지 않는다. 그들은 잠시 무대에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무대 위의 배우가 자기의 배역이 끝나면 사라지듯이, 그들도 성경에서 자취를 감추어 버린다. 그들이 세 명이라는 것은 마태오 복음서에 나오는 예물이 셋이기 때문이고,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동방박사 이야기는 기원 후 500 년경 발생한 전설에 불과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동방박사 이야기는 신앙인으로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베들레헴을 향해 길을 떠난 박사들의 여행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을 찾아 나서는 신앙인들의 여정을 상징한다. 동방박사들은 별을 보고 떠났다. 그들이 알고 있는 것은 별 하나였다. 흔하디 흔한 별들 중 하나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믿었다. 그 별은 하느님을 가리키는 유일한 나침반이라고. 그들은 마치 아브람이 자기 고향을 버리고 길을 떠났듯이, 정든 삶의 온상을 버리고 떠났다.

       자기에게 익숙한 곳, 자기를 인정해주는 곳을 떠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떠난 이후로, 과거의 편안함이 그립기도 하였을 것이고, 회의에 빠져 마음이 어둡기만 한 때도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헤로데 왕에게 가서 길을 묻기도 하고, 그의 간교한 주문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 간교함이 별을 향한 그들의 발걸음을 막지는 못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드디어 그들은 별이 가리키는 진리요 생명이신 하느님을 만나 그들의 정성을 바치고 우리 시야에서 사라졌다. 성경은 그들에 대해 다시는 말하지 않고 우리는 그들에 대해 더 알아볼 길도 없다. 그들은 그들의 역할을 다 하고 사라졌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인생이라는 길을 걷는다. 그 길 위에서 사랑하기도 하고, 환상을 쫓기도 한다. 돈을 쫓기도 하고, 권력을 쫓기도 한다. 때때로는 비굴하기도 하고, 거짓을 말하기도 하면서 길을 간다. 나 한 사람 잘났다고 착각하기도 하고, 이웃을 미워하기도 하면서 길을 가기도 한다.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시들고 마는 한 송이의 꽃과 같이 길지도 않은 인생길을 누구나 가고 있는 것이다.

      신앙인인 우리들은 진리요, 생명이신 하느님을 만나려, 신앙이라는 길을 따라 떠나는 여행자들이다. 신앙의 길을 걸으려는 여행자들이기에, 동방박사들처럼, 진리를 찾고자 하는 마음도 있어야 하고, 길을 떠나는 용기도 있어야 한다. 그러면서도, 동방박사들이 헤로데와 율법학자들의 엉뚱하고 때때로 간교한 주문도 들어야 했듯이, 우리도 살아가면서 마치 진리인 듯한 거짓에, 진실인 듯한 사이비에 빠질 수도 있고, 흔들릴 수도 있다. 동방박사들은 그럴 때에 오직 별만을 쫓으며 오직 하느님만을 향했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23년 전, 2001년 2월 1일 사제서품을 받고, 새내기 신부가 되었을 때에, 지금은 고인이 되신 장병룡 신부님께 인사를 드리러 간 적이 있었다. 그분은 새 신부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 신부로 살아가면서, 때로는 실수를 할 때도 있고, 때로는 실패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거기에 너무 오래 머물지 마라. 거기에 머무는 것 자체가 하느님으로부터 버림받는 것이고, 자기 스스로 하느님을 버리고, 신앙을 버리는 대죄다. 하느님은 그 실수를, 그 실패를 은총으로 주시는 거다. »

      때로는 넘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넘어져서 무릎이 깨어지기도 하는 것이 우리네 인생인 것 같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다시 일어서는 것이다. 다시 일어서서, 처음 가고자 했던 길로 다시 되돌아 오는 것이다. 동방박사들이 늘 염두에 두었던 별을 잊지 않았듯이, 우리도 그들처럼 그렇게 살아간다면, 동방 박사들이 마침내 별이 인도했던 구세주를 만나고, 그분께 자신들의 가장 고귀한 것을 드렸듯이, 우리도 우리들의 생명의 원천이요, 진리의 원천이신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그분께 우리들에게 가장 고귀한 것, 우리의 생명을 내어 드릴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바라는 것이 희망이고, 이렇게 믿는 것이 신앙이며,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사랑이다. 오늘 공현 대축일의 복음은 나에게 동방박사처럼 살라 한다. 

      
여러분에게 오늘 복음은 어떻게 다가오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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