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강론 – 다름의 신비
주임신부 2023. 12. 31, 덕계성당
어떤 총각과 처녀가 서로 사랑하여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남자는 치약을 가운데에서 부터 짜는 사람이었고, 여자는 치약을 아래에서 부터 짜는 사람이었습니다. 태어나서부터, 서로는 오랜 기간 동안 그렇게 다르게 살아 왔습니다. 그러다 결혼하여 함께 살다 보니, 이 사소한 차이, 치약을 짜는 다른 모습 때문에 싸움이 났습니다. 다르다는 것은 이렇게 불편한 경우를 만들기도 합니다. 나아가, 어떤 심각한 문제에 있어서 다르게 된다면 그 불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 올 해의 마지막 주일, 마지막 날을 맞으며, 교회는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런 오늘, 제가 무슨 주제로 말씀을 드릴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다름의 신비’라는 표현이 떠올랐습니다.
‘천지창조 때부터 창조주는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창세 1,27 참조)는 말이 있습니다. 참 신기합니다. 왜 하필 창조주는 사람을 그냥 남자로만도 아니요 여자로만도 아닌, 뿐만 아니라 그것도 우리 각자를 모두 다르게 창조하셨는지 말이지요.
생각해 보면, 그것은 바로 ‘다름의 신비’를 우리가 살아가라는 가르침이 아닐까 합니다. 사실, 다르다는 것은 문제의 소지가 되기도 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치약을 사용하는 방법조차도 서로 다르면 갈등이 생길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서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서로 맞추어 주어야 하고, 이해해야 하고, 양보도 해야 할 것입니다.
‘다름의 신비’란 무엇을 뜻할까요? ‘다르다는 것’은 ‘틀리다는 것’이 아닙니다. ‘다르다는 것’은 ‘같지 않다는 것’으로서, 다르기 때문에, 더 풍요로워지게 됩니다. 서로가 다른 만큼, 서로를 필요로 하게 되고, 상호 부족한 면들을 채워줄 수 있으며, 결국 발전을 이루어 내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상호간에 있어서 무엇이 다른 지를 먼저 알아가야 하리라고 봅니다. 다른 면들을 알고서 이를 받아들여야만, 서로에 대해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과정들을 거치며, 즉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상호 소통하는 가운데, 서로 다른 우리는 둘이 아니라 하나가 되어갈 것입니다.
가정 안에서, 그리고 이 세상살이와 교회살이 안에서 함께 살고 계신 여러분, 실상, 다르다는 것은 불편하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지만, 이는 또한 큰 선물이 아닐 수 없겠습니다. 그렇습니다. ‘다름’은 하나의 ‘신비’입니다. ‘서로가 다름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하나 됨의 지름길’이라는, 이 ‘다름의 신비’를 우리의 삶으로써 드러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서로 다르다는 것은 하나 됨을 위해서라는 이 위대한 ‘다름의 신비’를, 서로 다른 우리가, 우리 가정이, 우리 본당 공동체가 살아갈 수 있길 바래봅니다.
교형자매 여러분, 이 자리를 빌어, 한 해의 마지막 주일이며 마지막 날을 맞아, 이 한 해 동안 우리 본당 공동체의 발전을 위해서 수고해 주시고 함께 해 주신 여러분 모두에게 본당 공동체의 이름으로 감사드리며 하느님의 축복을 기원합니다.
올 한 해 마무리 잘 하시고, 여러분의 가정이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을 본받는 가운데 더 하나되는 좋은 모습으로 머물길 기도 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