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26일 화요일 성 스테파노 첫 순교자 축일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성탄이라고 많은 이들이 기뻐하고 즐거워한다. 하지만, 성탄의 기쁨을 채 만끽하기도 전에 스테파노 순교자의 축일을 지내는 것은 역사적으로 예수의 탄생일이 12월 25일로 정해지기 전에 이미 스테파노 순교자에 대한 기념을 이 날에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 다음날 맞이하는 스테파노 축일은 우리들 그리스도인들에게 경거망동을 삼가하라는 의미로 다가오는 듯하다.
외형적인 면에서만 본다면, 이 나라 이땅에서도 최고의 법인 헌법이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하지만, 몇몇 하위 법들-굳이 그 법들이 무슨 법들인지 말하지 않아도 알 것 이다-때문에, 사상의 자유는 제한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과거 한때, 교회는 지상에서의 삶의 가치와 그 녹녹치 않음을 간과하고, 하늘만 쳐다보고 살라고, 죽음 이후에는 행복이 올 것이라느니 하는, 말도 안 되는 식으로 내세의 행복을 지나치게 강조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면서 기득권자들의 이익과 통치자들, 힘있고 돈 있는 자들의 편에 달라 붙어 그들의 권익을 대변하던 시절이 있었다.
다행히 오늘날의 교회는 과거 중세와 근세에 저질렀던 잘못들을 인정하고, 이 현세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얼마나 고귀하고 거룩한 것인지를 말한다. 그리고 현세를 살아가는 백성의 삶과 백성이 사는 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시대의 사명이요, 교회의 사명이라 고 가르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사목헌장은 이렇게 말한다: “기쁨과 희망, 슬픔과 번뇌, 특히 현대의 가난한 사람과 고통에 신음하는 모든 사람들의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도들의 기쁨과 희망이며 슬픔과 번뇌인 것이다. 진실로 인간적인 것이라면 신도들의 심금을 울리지 않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신도들의 단체가 인간들로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신앙인으로 산다는 것은 이 세상 안에서 하느님나라의 풍요로움을 누리며 산다는 것 이다. 하지만, 그 나라에 산다는 것이 우리가 발을 디디고 서 있는 이 땅을 떠나서 어떤 낙원에서 산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신화나 전설에서나 나오는 따위의 그러한 낙원은 예수가 선포한 하느님 나라가 결코 아니다. 화려한 궁전에서, 온갖 보석들과 온갖 먹거리들로 가득 차 있는 곳, 그런 곳은 게으름뱅이들의 꿈에서나 나오는 곳일 뿐, 결코 하느님 나라가 아니다. 그러한 낙원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하느님 나라에서 살기를 희망하는 이들은 결코 허무맹랑한 것을 꿈꾸는 사람들이 아 니다. 그 어느 누구보다도 더 현실적이고 실제적이다. 그러면서도 미래에 대한 낙관적인 희망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이다. 더불어 하느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언제나 어디서나 박해를 각오해야 한다. 하느님의 일을 하려는 이들, 지금 여기에서 하느님 나라와 같은 삶을 살기를 희망하는 이들은 오늘 독서와 복음의 말씀들을 반드시 겪게 된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성숙한 신앙은 내가 기도를 얼마나 열심히 하는가? 내가 얼마나 매일 미사 참여하고 내가 얼마나 많은 봉사를 하고 있는가에 달린 것이 아니다. 세상의 부조리와 세상의 논리에 저항하고, 마침내는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서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소서, 저들은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라고 세상의 죄에 대한 용서를 청하는 것에 달려 있다.
신앙의 완성은 바로 십자가 위에 짐승처럼 매달린 저 어린 생명, 아기로 오신 성자 하느님이 도리어 자기를 때리고, 자기를 찌르고 자기에게 침뱉고, 기어이 자기를 죽이고야 마는 사람들을 도리어 용서해 달라고 기도했던 순간이었다.
신앙은 우리들에게 마음의 평안을 가져다 주기보다는 우리를 위협한다. 우리를 갈등 과 번민 속에 몰아넣기도 한다. 그러나 똑똑히 기억하자. 내가 누릴 마음의 평안은 세상의 평화와 함께 온다. 세상이 미쳐 날뛰는데, 나 혼자 마음의 평안을 누릴 수는 없다. 세상의 평화를 위해 하느님과 함께 일하는 과정 속에서 마음의 평안도 함께 온다. 오늘 독서와 복음은 나에게 이렇게 다가온다.
여러분에게 오늘 독서와 복음은 어떻게 다가오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