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성탄 대축일 낮 미사 강론 – 순명과 사랑
주임신부 2023. 12. 25, 덕계성당
여러분께서는 지금 우리 성당 성전의 제단을 향해 보고 계십니다. 보시면, 구세주이신 예수님께서 두 가지 다른 모습으로 당신 자신을 드러내고 계심을 알 수 있겠습니다. 하나는 우리를 위해 오늘 우리에게 다시금 오신 ‘아기 예수님’이시고, 다른 하나는 십자가에 매달려 ‘죽음에 이르신 예수님’이십니다. 하나는 ‘탄생’이고, 다른 하나는 ‘죽음’의 모습입니다. 너무나 극단적으로 반대의 의미를 지닌 다른 이 두 모습이 한 번에 드러나고 있음을 묵상하고 싶습니다.
일반적으로 ‘탄생’은 살기 시작했다는 것, 즉 살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탄생’은 죽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십자가에서 죽기 위해서 살기 시작하심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주님 성탄을 맞아, 죽기 위해서 살기 시작하신 예수님을 만납니다. 사실, 우리 모두도 탄생의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살기 시작함이건만 우리는 이를 외면하는 경우가 많은데, 정작 우리 삶도 예수님처럼 그러해야 함을 생각하게 됩니다.
오늘, 이 은혜로운 날에, 우리는 예수님의 삶을 바라보며 ‘두 가지 단어’를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하나는 ‘순명’이고, 다른 하나는 ‘사랑’입니다. 성경의 필리피서 2,8에는 예수님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명하셨습니다.” 그리고 미사 통상문 감사기도 제4양식에는 이런 기도문이 나옵니다. - “못내 사랑하시던 제자들을 끝내 사랑하셨으니”... 이렇게 볼 때, 오늘 우리에게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오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순명’하러 오신 분이시며, 우리 인간 각자를 끝까지 ‘사랑’하러 오신 분이십니다.
‘하느님께는 영광, 땅에는 평화!’를 노래하는 이 성탄절에, ‘하느님께는 순명, 인간에게는 사랑!’을 또한 노래하고 싶습니다.
예수님의 탄생과 죽음을 동시에 만나고 계시는 여러분, ‘하느님께는 순명, 인간에게는 사랑!’... 예수님의 지상 삶 전체를 통해 드러나는 이 표현이 우리 각자에게 전해지는 귀한 성탄 선물이 되고, 또한 선물을 넘어 우리의 삶 자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으로써, 우리 각자가 ‘또 다른 예수’로서 은혜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길 바래봅니다.
오늘, 주님의 성탄을 우리가 맞으며,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께서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 그리고 우리 본당 공동체에 건강과 은혜와 축복을 가득 내려 주시길 기원합니다.
이 강론을 우리의 것 되길 바라는 표현을 다시금 언급하며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 ‘하느님께는 순명, 인간에게는 사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