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25일 월요일 주님 성탄 대축일 낮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미사 지향

 참으로 다사다난했고, 참으로 숨가쁘게 달려 왔고, 여기 저기서 아프다, 힘들다는 소리가 온 나라를 힘들게 했던 2023년이 지나가고 있다. 그리고 안팎으로 더욱더 추워만 가는 이 때에, 우리는 주님의 성탄 축일을 맞이했다.


변두리로 밀려난 수많은 이웃의 눈물과 고통으로, 일자리를 잃어버린 이들의 막막함과, 전쟁으로 조국을 떠나 떠돌이 난민이 되어 버린 이들의 오열과 한숨으로, 후쿠시마 핵오 염수 방류로 말미암는 가슴 졸임으로 가득 찬 해였다. 그리고 지난해 1029 이태원 참사에 이 어 올해 7월 15일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 2지하차도 침수 사고, 해병대 채상병 사망사고로 말미암는 어이 상실과 망연자실과 절망과 분노의 눈물이 끊이지 않았던 한 해이기도 했다.

그러나 또한 동시에 그 절망과 분노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 또한 사람의 몫이고, 그래서 사람 이 희망임을 다시금 확인하는 은혜로운 한 해이기도 했다. 따스한 말 한마디와 꼬옥 맞잡은 손길이 희망이 되고, 위로와 위안 그리고 격려가 됨을 온몸으로 느꼈던 한 해였다.


 

 오늘 이 미사는 평화와 안녕, 기후 위기의 극복과 생태 환경의 회복, 그리고 공정과 상식에 목말라 하는 이 나라 이 땅의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봉헌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지금도 땀 흘리고, 눈물 흘리고, 목이 터져라 외치고, 평화롭지 못하고, 안녕하지 못하 며 공정과 상식이 적용되지 않아 아픔과 슬픔과 외로움과 쓰라림을 겪는 이들과 함께 그 고 통을 나누고자 하는 의로운 사람들, 하느님께서 비천함을 택하셔서 몸소 사람이 되신 성탄' 이라는 사건에서 아주 작은 희망이라도 발견하려는 이들을 위해서도 봉헌하고자 한다. 그리 고 또 아기 예수님께서 가지고 오신 천상의 빛을 받아서 어두운 이 세상에 작은 촛불 하나라도 밝히려고 모여 있는 우리 모두를 위해서도 이 미사를 봉헌하고자 한다.

 

아무리 경기가 바닥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반짝이는 전구들과 크리스마스 장식들 덕분에 하느님을 믿지 않는 이들도 축제라고 기뻐한다.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의 표정이 기쁘고 환하다. 왜 기뻐하는 것일까? 《왜 기뻐하세요? 라고 묻는다면 대개 사람들은 《크리스마스니 까,라고 답할 것이다.


그러나 생존의 문제 한가운데에서 살아가는 이들 가운데 적지 않은 이들에게 크리스마 스는 참으로 부담스러운 날이다. 흥청거리는 사람들이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분노를 치밀게 하기도 한다. 있는 사람은 더 많이 받게 될 것이고, 없는 사람은 있는 것마저도 빼앗기게 될 것이라는 성경의 말씀이 경제적인 관점에서조차도 마치 진리인 양 여겨지는 이 차갑디 차가운 현실이 못마땅하기까지 여겨지기도 한다.

참으로 많은 눈물과 아픔과 한숨으로, 참으로 많은 안타까움과 가슴 졸임으로, 참으로 많은 분노와 좌절로, 온 나라가 힘들었던 2023년이 지나가고 있다. 그리고 안팎으로 더욱더 추워만 가는 이 때에, 우리는 주님의 성탄 대축일, 크리스마스를 맞이했다.

 

크리스마스가 이 세상의 수많은 아픔과 한숨과 눈물을 치유하고, 닦아줄 수 있을까?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셨다는 이 복음이 온 세상에 울려 퍼졌다고, 이 세상의 아픔들이 순식간 에 사라져 버리는 것은 아니다. 지난 2천년의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2천년전, 예루살렘 옆에 있는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다윗의 고을, 베틀레헴의 어느 마구간에서 하느님의 아들이 탄생하셨지만, 세상은 여전히 아픔으로 신음소리를 내뱉고, 통곡소리는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화려한 궁전에서의 탄생이 아닌, 마구간에서의 탄생은 우리에게 한줄기 찬란한 빛처럼 다가오는 희망을 선사한다. 세상의 모든 아픔과 슬픔과 분노를 껴안기 위해, 하느님께 서 마굿간에서 탄생하셔서 사람이 되셨다는 이 사실이 세상에 희망을 선사한다. 세상의 모든 아픔과 슬픔과 분노를 한방에 다 날려 버리기 위함이 아니라, 그런 것들로 말미암아 힘겨워 하는 사람들과 함께 아파하기 위해서, 함께 눈물을 흘리기 위해서, 함께 한숨을 내쉬기 위해서, 함께 통곡하기 위해서, 함께 위로하기 위해서, 하느님께서는 사람이 되셨다는 것은 하느님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

 

오늘 복음에서 요한 복음사가는 《'말씀'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와 함께 계셨는데,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라고 말한다.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셨다는 것, 이는 이제 인간의 역사가 인간들만의 역사가 아니라, 인간이 되어 인간의 역사 안으로 뛰어드신 주님과 함께 하는 역사가 되었다는 말이다.

 

하느님의 강생은 이 세상의 시작에서부터 세상의 종말에 이르기까지 단 한번 일어난 사건이다. 그러나 강생의 신비는 역사 안에서 계속 되고 있으며, 세상 종말까지 계속될 것이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나의 것으로 여기며, 그 말씀이 이끄는 대로 내가 살아 간다면, 바로 내가 그리스도가 된다면, 말씀이신 그리스도는 내 안에서 또다시 강생하신다는 말이다.

 

내가 그리스도가 되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모여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와 영광을 드리는 장이 바로 교회다. 강생의 신비를 살아가려는 사람들의 모임이 교회다. 이 미사에 참석하고 있는 우리들 모두가 교회다. 말씀이 사람이 되신 분, 사람이 되신 하느님이신 예수께서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말을 잘 지킬 것이오. 그러면 나의 아버지께서도 그를 사랑하시겠 고, 아버지와 나는 그를 찾아가 그와 함께 살 것이오 (요한 14,23)라고 하셨다. 그렇다. 성경 의 말씀을 내 마음에 모시고 살 때에, 말씀은 우리 안에 태어나신다. 특히, 《내 살을 먹고 내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서 살고, 나도 그 안에서 삽니다 (요한 6,56)라는 말씀처럼, 성체 를 모시고 내 안에 오신 그분과 함께 대화를 나누고, 그분의 의지를 물으며, 그분이 바라시는 대로 내 삶을 살려고 노력할 때, 말씀은 새롭게 우리 안에 태어나신다.

 

기도하며, 그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 불우한 이웃 안에 사랑으로 내려갈 때, 불 의한 곳에서 정의를 부르짖을 때, 어두운 곳에 빛을 가져 오기 위해 노력할 때, 아파하는 곳 에서 함께 아파할 때, 차별과 부자와 그렇지 않은 자 간의 간격이 양극으로 치닫고 있는 곳 에 그건 사람 사는 데가 아니라고 울부짖을 때, 말씀은 새롭게 우리 안에 태어나신다.

 

2천년 전 아기로 오신 하느님이 2천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정녕 세상의 기쁨이 되기 위해서는 교회가 강생의 신비를 살아가야 하는 수 밖에 없다. 하느님께서 온갖 찬란한 영광을 모두 다 버리시고, 저 냄새나는 마굿간으로 내려오셔서, 말밥통에 당신의 나약한 몸을 누이 셨듯이, 온갖 아픔과 슬픔과 외로움과 괴로움과 분노와 절망으로 고통을 당하는 이들에게로 다가가서, 그들과 연대하는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오늘 우리 신앙인들이 축하하는 크리스마스는 우리들의 주님의 탄생을 기뻐하는 날인 동시에 강생의 신비를 우리들의 삶 속에서 늘 재현해야 하는 우리의 사명을 다시금 되새기는 날이다. 그 사명을 실천하는 삶이 그리 녹녹하지는 않다.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 이 세상에 왔다. 그분께서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분께서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요한 1, 9)는 말씀처럼 그 사명을 실천하려 하면, 세상은 우리를 맞아 들이려 하기 보다는 우리를 되려 내치려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사명을 실천하면 할수록, 세상의 아픔과 슬픔과 분노는 조금씩 조금씩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반드시 이 세상이 하느님 나라가 될 것이다. 이 희망을 다시 한번 꿈꾸는 날이 바로 오늘 크리스마스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2천년 전, 요한 복음 사가는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고, 《그분의 충만함에서 우리 모두 은총에 은총을 받았다고 선포했다. 요한 복음사가의 이 말씀이 우리 신앙인들의 삶을 증거하는 말씀이 되기를 바래본다.
 

특별히 우리 김해성당 공동체의 삶을 이야기하는 말씀이 되기를 바래본다. 
 

나의 이 바램에 함께 동참하시지 않으시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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