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2790호 2023. 12. 25 
글쓴이 신호철 주교 
가장 외로운 때에 가장 어둡고 힘든 그곳에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교구 총대리 신호철 비오 주교


 

   요셉과 마리아는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에서 살았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고 로마 황제는 온 세상에 호적 등록을 명했습니다. 요셉의 본향은 유다 지방 베들레헴이어서 요셉은 만삭의 아내 마리아를 데리고 베들레헴으로 갔습니다. 마리아는 거기서 예수님을 낳았는데, 여관에는 마땅한 자리가 없었기에 마굿간에서 출산하여 아기를 구유에 뉘었습니다: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루카 2,7ㄷ).
 
   권력가나 부자는 궁궐이나 방이 여럿 있는 큰 집에서 살았겠지만, 이스라엘 서민들의 집은 방 하나에 마구간이 딸린 소박한 구조였습니다. 한밤중에 찾아와 문을 두드리면서 빵을 빌려달라는 친구에게 “벌써 문을 닫아걸고 아이들과 함께 잠자리에 들었네. 그러니 지금 일어나서 건네줄 수가 없네.”(루카 11,7)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도 이러한 가옥 구조와 관련이 있습니다.
 
   호구조사로 인해 방문객이 붐비는 시기에 많은 손님들이 하나의 방에서 묵는 여관에서는 출산하려는 성모님의 몸을 가려줄 곳이 마구간 밖에는 없었을 것입니다. 만삭의 여인이 무거운 몸을 힘겹게 이끌고 집에서 멀리 떨어진 타향 베들레헴까지 가는 것만도 힘겨운데 집이 아닌 여관에서 그것도 추운 겨울 허술한 마구간에서 그렇게 성모님은 아기를 출산하였습니다. 그렇게 낳은 아기가 후에는 십자가에서 처참히 죽어가는 것을 또한 바라보아야 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께서 우리 눈에 드러나셨을 때, 그분은 화려한 왕궁이나 부자의 큰 저택에서 모습을 드러내시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은 가난한 우리의 일상 안에서 가장 가난한 모습으로 나타나셨고, 가장 처절하고 참혹한 고통 속에서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의 눈에 나타나셨을 때 그분께서 우리의 모든 행복과 고통 속에 늘 함께 계신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통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희망합니다. 우리가 혼자 있다고 여기는 그때에 그리고 우리가 가장 힘들고 아파하는 그곳에 우리를 사랑하고 지켜주시는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교우 여러분, 성탄을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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