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19일 화요일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엘리사벳과 가리야, 그들에 대한 성경의 이야기를 가만히 보면, 저주를 받을 정도로 잘못을 저지른 부부는 아니었다. 남을 속여 먹은 일도 없고, 노동력을 착취한 일도 없고, 투기나 사기를 치고 산 적도 없던 이들이었다. 그저, 하느님 앞에 의롭게 살아온 이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운명은 참으로 기구했다. 오늘날에야 과학과 의학의 발달로, 불임의 이유가 여자쪽에 있을 수도 있고, 남자쪽에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누구나 다 알지만, 2천년전에 그렇 게 생각했겠는가? 

불과 100여년 전만 하더라도, 남녀가 결혼을 해서 아이를 가지지 못하면, 그 탓은 온전히 여자에게만 있었다.

 

엘리사벳은 분명, 좋다는 약도 써보았을 것이고, 임신하는 데에는 '이게 좋더라, 저게 좋더라'는 식의 말들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제 아무리 몸 부림 쳐보아도 부질 없는 일이었다. 좌절과 체념 속에서, 아니 어쩌면 절망을 자신의 업보인 양 살아 왔을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은 맹세하신다"는 엘리사벳이라는 이름이 의미하는 바 처럼, 하느님은 엘리사벳을 결코 좌절과 체념 속에서 살다가 죽도록 내버려 두시지 않았다.

 

어느 날, 늙고 말라버린 고목에서 새싹이 트고 햇순이 솟듯이, 성경의 표현처럼, 이새의 늙은 뿌리에서 새 싹이 돋아나듯이(이사 11, 1), 돌처럼 굳어버린 자궁에 핏기가 돌아 엘리사벳은 드디어 임신에 성공한다.

사방 팔방이 다 막히면, 사람은 하늘을 향해 고개를 쳐든다. 하늘을 원망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늘을 뚫어져라 쳐다 보는 이들도 있을 것이고, 마지막으로 하늘에 희망을 두기 위해서 하늘에 머리를 읊조리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늘은 불가능 속에 새로운 가능성을, 절망 속에 새로운 희망을, 혼돈 속에 창조의지를 언제나 지닌 존재다.

그 하늘을 믿지 않는 이들에게는 헛소리로 여겨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늘을 믿고 하늘을 신앙하는 이에게는 실망은 있을 수 있으나, 체념이나 절망이란 없다. 하늘이 시작이요 마침임을 절대적으로 믿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희망을 가져다 준다. 석녀의 몸에 태기가 돌았다는 것, 그리고 그녀의 태 속에 자리를 잡은 아기는 장차 주님보다 먼저 와서, 역사의 반역자들, 백성의 피 위에 군림하려는 자들, 백성을 억압하는 자들의 생각을 고쳐 먹게 만들고, 하느님 나라를 맞아들일 수 있는 사람들로 거듭나게 하기 위한 회개를 부르짖을 세례자 요한으로 자라날 것이라는 것이다.

 

세상이 어두울수록, 자그마한 촛불 하나가 더욱 빛나게 밝아 보이는 법이다. 주님이 오실 길을 마련하려는 세례자 요한과 같은 사람들은 분명 이 시대에도 있다. 그들이 민초들에게 희망을 준다. 그런데, 희망을 주는 사람들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안녕하지 못한 이들에게 그래도 희망이 있다고, 죽고 부활하신 주님이 계시니 밝음이 있다고, 그러니 절망하지 말자고, 안녕치 못한 이들에게 온몸으로 안녕을 외치는 이들이 바로 빛과 희망으로 오실 주님을 애타게 기다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다. 

오늘 복음은 나에게 희망의 사람이 되라고 채근한다. 

여러분에게 오늘 복음은 어떻게 다가오고 있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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