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는 물보다 진하다

가톨릭부산 2016.01.13 10:09 조회 수 : 187

호수 2365호 2016.01.17 
글쓴이 원정학 신부 

피는 물보다 진하다

원정학 바오로 신부 / 교정사목 담당

  예전에 어떤 자매님과 논쟁을 벌인 적이 있습니다. 물론 저는 사목적 관점에서 바른 이야기를 하려고 애썼고, 자매님은 자신의 상황에서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가세를 해서 자매님을 거드는 바람에 저는 궁지에 몰리게 되었습니다.‘이그, 가재는 게 편이구나’라는 생각에 한숨도 나왔고, 그렇다고 물러서고 싶지도 않았지만, 아내를 거드는 남편이 밉지는 않았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에서‘혼인’이라는 관계가 어떤 것인가를 보도하기보다는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과의 관계가 어떤 것인가를 시사하고 있습니다. 혼인한 부부에게 생긴 곤란한 사정에 대해서는“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라고 말씀하시면서도 부부에게 곤란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물’을‘포도주’로 변화시킨 기적은 단순한 사회적 관계의‘혼인’을 성사적 관계의 혼인 즉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관계적 의미로 바꾸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실 시작부터가 옳고 그른 기준이 아닌 서로 사랑해서 혼인을 하고 자녀를 낳아 사랑으로 돌봄으로 가정과 사회를 형성해 나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기적 욕심이 사랑을 방해하고, 복잡한 관계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질서를 위해 명분과 계약으로 재규정함으로써‘옳고’‘그른’관계라는 것이 생겨났습니다.
  하지만 이 관계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시 새로운 관계로 맺어졌습니다. 본래 하느님이 사랑했던 그 마음이 바로 이 혼인잔치의 기적을 통해 온전한 표징이 된 것입니다. 마치 남편이 아내의 편을 드는 마음의 내용은‘신부님, 아내가 신부님의 옳고 그름의 관점 때문에 곤란해 하고 있습니다. 신부님의 뜻을 몰라서가 아니라 아직 부족한 저희를 이해해 주십사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라고 이해함으로써 서로의 관계를 이해하고 서로 사랑하도록 이끄시는 주님의 말씀이 담겨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사뭇 하느님의 일을 변경하려 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혼인한 부부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사랑의 어머니 모습이 더 강하게 드러나고 있으며 주님께 온전히 순명하여 받드는 행위를 통해 하느님과 백성의 관계가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를 뚜렷이 보여줍니다. 우리는 정의로써 하느님과의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으로 관계가 맺어졌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랑은 피로 맺어졌고 물보다 진합니다. 세상은 이 피로 맺어진 관계를 인맥으로 변질시키지만, 성모님의 자애는 인맥이 아닌 순수한 인간에 대한 사랑의 피로 맺어지도록 안내하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로 맺어진 새로운 사랑의 관계자로서 또 하나의‘혼인의 기적’을 만드는 증거자가 되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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