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14일 목요일 십자가의 성 요한 사제 학자 기념일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오늘 제1독서의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은 가진 자들, 힘있는 자들에게 별 감흥을 주지 못한다. 갈증으로 혀가 타는 가련한 이들과 가난한 이들에게 응답하고 그들을 버리지 않는 하느님이 별로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자신들이 이미 가지고 있는 재력과 권력과 능력을 유지시켜 주거나, 더 불려 주거나, 더 강하게 해주는 하느님이면 충분하다. 가진 자들 주위에는 하느님의 아름다운 창조물들이 그득한 것 같고, 자신의 부와 권력과 명예는 하느님께서 주신 은총이라고 어렵지 않게 신앙을 고백할 수 있다. 다다익선多多益善이라고, 없는 것 보다는 있는 것이 더 낫다고, 거룩한 생활과 습관을 가지게 해주고, 업그레이드된 인생을 살 수 있게 해주는 하느님이니, 그들에게는 하느님이라는 존재가 그다지 자신들의 실존적
갈증을 해갈해주는 분이 아니다.


 

  하느님은 가난한 사람들, 과부와 어린이 같은 힘없는 이들을 편애하신다는 것은 구약 시대의 예언자들의 공통된 신앙고백이었고, 이 신앙고백을 온몸으로 보여주신 분이 우리가 주님이라고 부르는 예수님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가진 자들, 힘있는 자들의 소위 신 앙이라는 것이 결국은 하느님께 똥물을 끼얹어 드리는 짓, 곧 폭력이라고 선언하신다: 《폭력을 쓰는 자들이 하늘 나라를 빼앗으려고 합니다.


  무려 2천년이라는 엄청난 시간이 흘렀음에도, 2천년 전 예수 시대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겉모양은 바뀌어도 그 내면과 사람들의 삶의 논리는 별로 변한 게 없어서일까, 이 말씀은 여전히 2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통용되고 있다.



  군대를 이끌고, 무기를 앞세워서 전쟁을 일으키고, 다른 사람들을, 다른 나라들을 정 복하는 것만이 폭력이 아니다. 생명을 경시하고, 가난하고 소외되고 버림받은 사람들을 무시 하고, 그들에게 눈길 하나 주려고 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인권에 무관심하며 살아가는 삶 자 체가 사실은 폭력이다. 그러한 폭력은 2천년 전에도 있었고, 지금의 우리 시대에도 그 폭력은 여전히 얼굴만 달리한 채, 존재하고 있다.

 

  세례자 요한은 그러한 폭력에 대항해서,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부르짖었고, 하늘 나라, 곧 하느님이 폭력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음을, 폭력으로 그 나라가 빼앗기고 있음 을 광야에서의 처절한 삶으로 보여주었다. 오늘날에야 세례자 요한처럼 먹고 사는 것이 웰빙 이 되어 버렸지만, 낙타 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두르며, 메뚜기와 들꿀을 먹고 사는 삶이 2천년 전의 그 시대에서는 굶어 죽기 십상이거나, 사나운 동물들에게 잡아 먹힐 수도 있는 위험에 언제나 노출되어 있던 삶이었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대림시기는 나의 주님이신 그분이 가난하고 소외되고 버림받은 사람들을 먼저 선택 하시고, 먼저 사랑을 베푸셨듯, 그러하지 못한 삶을 살아왔던 나를 반성하고, 이제부터라도 그러한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고, 실천하면서 살아보는 때다. 힘있고, 돈 있는 자들의 잔 치가 크리스마스가 아니라, 그들의 잔치에 부지불식간에 덩달아 어깨춤을 추는 날이 크리스마스가 아니라, 정녕 세상의 어두움과 아픔과 슬픔을 함께 하려고 신으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영광을 다 버리고 사람이 되신 분이 세상에 오신 날이 크리스마스다. 

  성탄 트리 한껏 장식하고, 도시의 밤을 온갖 전구빛으로 수놓아 놓고는 연말 기분좋게 보내자는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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