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3일 대림 제1주일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가톨릭 교회의 달력, 곧 전례력은 일반 태양력보다 거의 한달 빨리 시작하고, 한달 빨리 끝난다. 세상의 고통과 어려움과 절망을 그만큼 빨리 끌어안고, 희망과 용기와 사랑을 전하는데 그만큼 빨리 움직이라는 뜻이 있지 않나 싶다. 오늘 12월 3일부터 12월 24일 저녁까지 22일간 우리가 지내게 될 대림시기는 사순 시기와 같은 속죄와 단식을 선포하는 그런 기다림의 때가 아니다. 많은 교우들이 대림시기를 사순 시기와 비슷한 참회와 속죄의 시기로 생각하는데 교회의 대림시기에 관한 지침에는 참회에 관한 말이 없다. 대림시기에도 사순시기처럼 대영광송을 부르지 않지만, 슬퍼해야 하기 때문이 아니라 성탄 당일 가장 알맞은 이 노래를 기쁜 마음으로 새롭게 부르기 위해 일시적으로 보류하기 때문이다. 대림시기는 엄격 한 고행의 시기가 아니라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잘 준비하기 위해 깨어있는 그런 기다림의 때이다. 교회는 그래서 대림에 알렐루야를 계속 노래한다. 대영광송을 하지 않는 것은 천사 들의 노래를 성탄 밤, 더욱 장엄하게 엄숙하게 선포하기 위하여 잠시 보류해 놓은 것이다.


 

  오늘 복음을 두고, 가톨릭 교회는 주님께서 다시 재림하시는 세상의 마지막 날이 언 제가 될지, 오늘 밤이 될지, 내일 아침이 될지 모르니 언제나 깨어 있어야 한다고 가르쳐왔다.

그런데 이러한 해석은 다소 사람들을 권태에 빠지게 한다. 언제 올지 모르는 기다림은 사람 을 힘 빠지게 할 뿐만 아니라, 그 기다림이 길어진다고 느껴지면서부터는 기다림의 이유조차 도 잊어 버리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마침내 왜 기다려야 하는지, 그 까닭을 까맣게 잊어 버 리는 지경에 이르게 되면, <<신은 없다. 신은 죽었다>> 라는 말도 나오게 된다.

 

그러나 주님은 이미 오셨다. 2천년 전, 베틀레헴의 마굿간에서 태어난 아기로만 오신 것이 아니다.
지상에서의 30년에 가까운 세월을 사신 것만이 그분이 오셨다는 증거가 아니다.

죽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면서, 그분은 언제나 당신의 제자들과 함께 있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둘이나 셋이 모여 기도하는 곳이면 언제나 당신께서 함께 하시겠다는 말씀도 하셨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세상 종말의 심판에 대한 말씀을 하시면서(마태오 복음 25장 참조), 그분께서는 이 세상의 가난하고 소외되고 버림받은 사람들과 당신을 동일시하셨다.
그러므로, 가난하고 소외되고 버림받은 사람들이 존재하는 곳에, 언제나 그분도 존재하신다.


 

 이러한 의미에서 오늘 복음은 <<이미 오신 주님>>과 <<장차 오실 주님, 그래서 다행히 아직은 오지 않으신 주님>>이라는 두 시간의 간격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 그리스도인들에게 《장차 오실 주님을 잘 기다리면서, 잘 맞이하기 위해서는 << 이미 오신 주님>>께 충실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들려준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이 대림待臨시기동안 김해성당 주임 신부로서 나는 여러분에게 매일 하루 1회 이상 << 사랑합니다 >>, <<사랑한다 >>, 혹은 << 사랑해 >>라는 이 단어를 입밖으로 발음해주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린다. 여러분이 만나는 수많은 관계 속에서 여러분이 먼저 << 사랑합니다>>, << 사랑해 >> , << 사랑한다 >>, 라고, 여러분의 마음 속에 있는 따스함을 입밖으로 드러내 주시기를 부탁드린다.
 

여러분의 삶의 자리 곳곳에서, 아내보다 먼저, 남편보다 먼저, 자녀보다 먼저, 부모보다 먼저, 아랫사람보다 먼저  << 사랑합니다 >>, << 사랑해 >> , << 사랑한다 >>를 발음해 주시기기를 부탁드린다. 닭살돋고, 쭈글스럽고, 낯선 말이다. 하다못해, 길가다가 보이는 가로수를 쓰다듬으면서도 << 사랑합니다>>, << 사랑해 >>, << 사랑한다 >>를 발음해주시기기를 부탁드린다. 집에 있는 강아지나 고양이를 쓰다듬으면서도 << 사랑해 >> 라고 발음해 주시기 바란다. 손자, 손녀, 외손자, 외손녀에게도 << 사랑해  >> 라고 발음해 주시기 바란다. 일생동안 << 사랑합니다 >>, << 사랑해 >>,  << 사랑한다 >>라는 말을 우리가 얼마나 쓰면서 살겠는가? 1000번도 제대로 못쓴다.

 

사랑한다는 이 말에는 힘이 있다. 나를 변화시키는 힘이 있고, 너를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이해인 수녀님으로 더 잘 알려진 이정숙 클라우디아 수녀님의 시들 중에 << 사랑한다는 말은 >>,이라는 시가 있다. 노래로도 잘 알려진 시다. 이 시는 사랑한다는 말이 얼마나 대단한 지 너무나도 쉽게 우리에게 알려준다.

 

         사랑한다는 말은 가시덤불 속에 핀 하얀 찔레꽃의 한숨 같은 것.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은 한자락 바람에도 문득 흔들리는 나뭇가지.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는 말은 무수한 별들을 한꺼번에 쏟아내는 거대한 밤하늘이다.

         
         어둠 속에서도 훤히 얼굴이 빛나고 절망 속에서도 키가 크는 한 마디의 말

         
         얼마나 놀랍고도 황홀한 고백인가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는 말은
 

  << 사랑한다 >> 고 말하는 바로 그 자리가 이미 오신 주님을 만나는 자리이고, 장차 오실 주님을 깨어 기다리는 자리다. 그리고 << 사랑한다 >> 를 발음하는 바로 그 순간이 사람이 사람 에게 복음이 되는 시간이고,  << 너 >>속에서 살아계시는 하느님을 만나는 시간이다. 2023년 대림 시기, 우리모두 << 사랑합니다 >>, << 사랑한다 >>,  << 사랑해 >>와 함께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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