뱃고동이 우렁차게 울어대네요
인근식당 교우님이 운영하시는
대발이 식당에서 맛난 점심먹고
다시 추기경님 생가에 모였습니다.

추기경께서 살아생전
50년만에 고향을 찾았음에도
한눈에 이집이다 하셨다네요


형님과 사제놀이를 하며
"형님은 신부해라.
나는 주교될끼다."하셨다는데
말이 겨자씨처럼 자라나
한국천주교 역사에
큰 불씨가 되었습니다.

열강하시는 신부님

살아계셨다면
더 따뜻한 온기로
몸을 녹여주셨을듯합니다.


너무나 환한 미소에 한 컷

잔디광장
로뎀나무반

포도나무반 선생님은
응급환자 케어하러
가셔서 제가 대신했습니다.

떨기나무반


빡빡한 일정때문에
평화의 숲과
십자가의 길
추모정원은
돌아보지 못하고
바쁜 발걸음을 돌려야 했습니다.
1층 기념관에 전시된
추기경의 상반신 사진이
이 공원의 상징사진입니다.
당시 추기경은 84세였고
육체적 고통이 극에 달했던
시기였지만,
고통을 승화시킨
해맑은 미소는
서거 이후에도 모든 이들에게
희망과 위로가 되고 있습니다.
몇장의 사진과
몇줄의 글로
추기경의 고귀한
순교적 삶을 어떻게
담을 수 있을 것이며,
모든 사람들의 아픔을
당신의 아픔으로
여기신 추기경의
사랑과나눔의
정신도 표현할 수는
없을것입니다.
살아있는 자의 몫은
추기경을 비롯한
모든 신앙선조들과 하느님 앞에서
늘 겸손한 마음으로 십자가를 지고
매일 죽을 각오로
이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하늘 나라는 이 어린이와 같은
이들의 것이다."(루카 1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