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燈)을 채웁시다.

가톨릭부산 2023.11.08 10:58 조회 수 : 6

호수 2783호 2023. 11. 12 
글쓴이 김현영 신부 

등(燈)을 채웁시다.
 

 
 
김현영 신부
사직대건성당 성사담당
 
 
   오늘 복음에는 하느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우리가 등장합니다. 그날과 그 시간을 모르는, 그렇지만 언젠가 오실 그 분의 때를 기쁘게 기다리고 있는, 세상의 눈으로 보면 어리석고 답답하기 그지없는 우리 믿는 이들이 있습니다.
 
   출발 때의 조건은 모두 똑같습니다. 순수하고, 저마다의 등을 가지고 있으며, 그분이 오실 것을 알고 있습니다. 신랑이 늦어지자 조는 모습도 똑같습니다. 외치는 소리를 듣고 일어나는 것도 같습니다. 그런데, 한밤중이었습니다. 등이 필요합니다. 내 앞도 비추어야 하고, 오실 분의 앞길도 밝혀야 하는데, 어떤 이의 등에는 길을 밝힐 기름이 없습니다.
 
   “우리 등이 꺼져 가니….” 말하는 것을 보니 처음에는 기름이 있었던 듯합니다. 그들은 살아오면서 한 번도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을 모르고 있었을 것입니다. 아니 단 한 번도 다른 이를 위해 쓸 만큼의 기름을 준비해 본 적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주님께서는 그들을 “어리석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한다.”라고 대답하십니다. 어리석은 이들에게는 영원한 어둠이 장막처럼 내려옵니다.
 
   세례 때에 우리의 영혼은 “세상의 어떤 마전장이도 그토록 하얗게 할 수 없을 만큼 새하얗게 빛났습니다.”(마르 9,3)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는 영을 선물로 주기도 하셨습니다.(요한 20,22 참조) 그리고 “서로 사랑하며”(요한 13,34)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세례를 받은 우리 가톨릭 신자들은 똑같은 출발선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지요? 그날을 밝힐 사랑과 용서 그리고 기쁨이라는 기름을 가득 채우고 있으시겠지요!
 
   “지혜는 자기에게 맞갖은 이들을 스스로 찾아 돌아다니고, 그들이 다니는 길에서 상냥하게 모습을 드러내며, 그들의 모든 생각 속에서 그들을 만나 준다.”(지혜 6,16)
 
   수고하지만 등에 진 십자가를 무거워하거나 귀찮아하지 않고, 끊임없이 그분의 앞길을 밝히고 살아가는, 믿는 이들을 찾아서 만나 주시는 하느님의 상냥하신 모습을 우리의 영에 새기고 걸어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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