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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 수녀 '기도의 창가에서'] 환대에 대한 생각들 (naver.com)

1) 손님맞이

손님들을 만나기 전엔

왠지 조금 긴장이 되지요

마음의 창을 열고 이야길 나누며

차를 마시는 사이

어느새 우리는 처음 보아도

낯설지 않은 친구가 됩니다

기도를 약속하는 가족이 됩니다

각기 다른 모습의 손님들을

한 송이 꽃이라고 생각하며

조심 조심 예를 갖춰

정성껏 대해주면

그들만의 고운 향기를

남겨놓고 떠납니다

나는 가만히 뒷정리를 하며

헤어지고 나서도

환대의 미소를 먼 데까지 날려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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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울에 갔던 이해인 수녀가 가을 우체국 앞에서 찍은 사진을 보내왔다. 본인 제공
100명이 훨씬 넘는 식구들이 살고 있는 부산 광안리 우리 본원(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에는 하루도 손님이 오지 않는 날이 없습니다.

제가 예전부터 알고 지내는 이들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잘 모르는 이들도 오며 가며 글방에 들르기 때문에 언제라도 환대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합니다.

인사를 나눈 뒤에 시 엽서를 함께 보면서 서로 대화하고, 그런 뒤 헤어질 땐 방명록에 메모를 남기고 거의 모든 이가 기념사진을 찍곤 합니다.

이틀간 대구에서 강의를 하고 온 어제는 누구도 안 만나고 쉬고 싶었는데, 80대의 두 할머니가 부산 온 김에 해인수녀를 꼭 만나고 싶었다며 찾아왔다가 미리 약속되지 않으면 만날 수 없다는 안내를 경비실에서 받고 돌아서는 길에 우연히 어느 수녀님을 만나 친절하게 연결되어 저를 만났습니다.

“곧 낮 기도가 시작되니 성당에서 함께 기도하시고 근방에서 식사하신 후 차 한잔하러 다시 오실래요?”라고 했더니 기적이 일어난 것 같다며 죽어도 한이 없다며 너무도 기뻐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손님이 오지 않는 집은 천사도 오지 않는다’. ‘낯선 이를 냉대하지 말라, 천사일지 모르니’. 글방 여러 곳에 저는 환대에 대한 격언을 붙여놓고 혹시라도 손님들을 차별하거나 무례하게 대하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바쁜 것을 핑계로 어느 젊은 여성과의 면담을 거절했다가 얼마 뒤에 그녀가 돌이킬 수 없는 선택으로 생을 마감했다는 말을 들었을 땐 자책하며 슬퍼했지만, 다시는 그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는 후회로움만 가득했지요. 환대의 미덕을 가꾸는 데는 약간의 용기와 너그러움과 지혜가 필요할 것입니다.

처음 보는 미지의 독자나 이웃이 찾아올 때 저는 이런 태도로 자신만의 지침을 챙깁니다.

바쁜 중에 잠시 짬을 내되 상대방이 눈치채고 미안해할 부담스러운 표현을 하지 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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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복 입은 수도자를 만나는 일 자체가 긴장되는 일이다 보니 함부로 훈계하거나 종교적인 언어로 가르치는 말을 피하고 오히려 상대방이 좋아하는 음악이나 꽃에 대해 물어보는 인간적인 대화를 하는 따뜻함을 지니려고 합니다.

어떤 힘든 일로 찾아온 이들에겐 단 한 번의 만남에 그치지 않고 아주 가끔씩 안부를 물어 잘 지내고 있는지 여부를 확인해 봅니다.

우울증이 도져 죽고싶다거나 가족들과 화해하지 못해 삶에 평화가 없는 이들에게는 제가 아프고 힘들 때 쓴 글을 한 번 보시라고, 같이 기도하자고, 큰 도움이 못 되어 미안하다는 말을 해줍니다.

남에 대한 환대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마음에 안 드는 나 자신을 용서하고 환대하는 용기도 필요한 듯 해요.

시간이 너무 빨리 가서 아쉽다고 푸념하기 전에 다시 오기도 하는 새로운 시간들을 반기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미리 누리는 천국’을 살아보며 웃어 보리라 가만히 다짐해 봅니다.

2) 천국에 대한 생각

하늘에서 숲에서

새들이 노래하고

땅에는 꽃들이 많이 피고

나비가 날아오면

여기가 천국인가

늘 감탄하곤 했지요

그런데 나이를 먹을수록

기억력이 감퇴할수록

내가 나를 알아보고

다른 이를 알아보고

매일 매일 함께 사는 기쁨을

새롭게 감사할 수 있으니

여기가 천국인 것 같네요

아주 먼 그 나라는

안 가봐서 모르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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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야말로

미리 누리는 천국이란 생각을 하며

명랑한 웃음을 되찾는 중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