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보다 먼저 오시는 하느님
2023. 9. 17.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대축일
오늘은 원래 연중 제25주일이지만, 한국교회는 9월 20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순교자 대축일을 오늘로 옮겨서 지냅니다. 오늘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을 포함한 한국의 103위 순교성인을 기억하고 공경하며, 한국 천주교회의 가장 중요한 특징 하나에 대해 함께 묵상하도록 하겠습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한국 천주교회는 선교사 없이 평신도가 자발적으로 시작한 교회입니다. 다른 나라의 사례를 보면, 대개 선교사가 그 지역에 가서 군주와 귀족들에게 세례를 주고 점차로 그 영향이 아래로 퍼져갑니다. 독일 지역에는 성 보니파시오가, 아일랜드에는 성 파트리시오와 성 콜롬바노가 그러했습니다. 많은 경우 위에서 시작되어 아래로 내려오는 선교였습니다. 그러나 한국 교회는 평신도로 시작하고,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선교였습니다. 지금부터 230여년 전에 중국에 사신으로 다니던 학자들이 천주교에 관한 서적을 만나게 됩니다. 그 중에는 이태리의 예수회 선교사였던 마태오 리치 신부의 <천주실의>라는 책이 있었습니다. 풀이하자면 하느님의 참다운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교, 도교의 개념을 빌어서 하느님과 천주교에 대해 설명한 책이었습니다. 이 책을 학자들이 돌려 읽고 토론하면서 한국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들은 이승훈, 이벽, 정약전, 그리고 처음에는 이 모임에 참여하다가 나중에는 빠져버린 정약용 등입니다. 이들 중 이승훈이 가장 먼저 북경에 가서 세례를 받고 돌아옵니다. 이들이 책을 읽으며 함께 공부한 곳이 지금의 경기도 미리내로 알려져 있고, 이승훈이 세례를 받고 돌아와서 공동체를 형성한 곳이 바로 지금의 명동성당 자리입니다. 이렇게 한국교회는 선교사 없이 평신도들이 자발적으로 시작한 교회이며, 아래에서부터 시작된 교회입니다.
선교사 없이 평신도들의 자발적 공동체가 형성되면서, 신앙의 가르침을 온전히 자신들의 삶으로 실천했습니다. 신분의 차별을 넘어 모두가 형제 자매로 불리웠으며, 남녀의 차별을 넘어 모두에게 이름이 주어졌습니다. 당시에 제대로된 이름조차 없던 여성들에게, 비록 외국 이름으로 지어진 세례명이긴 하지만 모든 여성에게도 이름이 주어졌습니다. 표면적으로 제사 문제였지만, 당시 정치적인 소용돌이에 휘말려 네 차례의 큰 박해를 당했고, 수많은 순교자가 희생되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희생 위에 오늘의 한국천주교회가 서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선교사 없이, 그리고 평신도들의 자발적인 헌신으로 시작되었다는 점을 곰곰히 묵상해보면, 하느님은 선교사보다 먼저 오신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느님은 선교사가 이 땅을 밟기 전에 이미 우리 민족에게 오셨습니다. 우리 안에 하늘을 공경하고 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하느님은 우리 안에 진리를 찾고 정의를 실현할 마음을 이미 주셨음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나라에서 천주교가 시작할 때만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은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마음 속에 누구보다도 먼저 와 계십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그 이전에는 누려보지 못한 물질적 풍요 속에 살아갑니다. 겉으로 누리는 물질적 풍요와는 달리 현대인의 내면은 그 이전 어느 때보다 외롭고 힘들게 살아갑니다. 겉으로는 외면하고 있지만, 많은 이들은 삶의 위안을 찾으려 하고 의지할 곳을 찾고 있습니다. 신앙의 관점에서 말하자면, 이들은 내면 깊숙한 곳에서부터 하느님의 평화와 위로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이 사실 선교사보다 그들에게 먼저 와 계십니다. 내가 그 이웃에게 다가서기 전에 이미 하느님은 그 이웃의 마음 속에 와 계십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가 내 이웃의 마음 안에 하느님이 이미 와계시다는 것을 알려 주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이미 와 계신 하느님을 드러내는 선교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한국 순교성인들의 대축일을 지내며, 우리 모두가 선조들을 본받아 자발적인 선교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모두가 우리 이웃들의 마음 깊숙한 곳에서 갈망하는 그것이 바로 하느님의 평화이자 위로라는 사실을 이웃에게 전해주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의 기도를 모아, 오늘 이 미사를 봉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