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밀알

가톨릭부산 2023.09.13 13:59 조회 수 : 22

호수 2775호 2023. 9. 17 
글쓴이 유영일 신부 


하느님의 밀알
 


 
유영일 신부
메리놀병원 원목
 
   성직자, 수도자들은 아침, 저녁 기도를 성무일도로 바칩니다. 성무일도에는 독서 기도가 있는데 제1독서는 성경 구절로, 제2독서는 주로 성인들의 글이나 편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다음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의 독서 기도 제2독서입니다.
 
  “나는 모든 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여러분이 방해만 하지 않으면 내가 하느님을 위해 기꺼이 죽으러 간다고 모두에게 알렸습니다. 나의 간청입니다. 불필요한 호의를 나에게 베풀지 마십시오. 나를 맹수의 먹이가 되게 버려두십시오. 나는 그것을 통해서 하느님께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나는 하느님의 밀알입니다. 나는 맹수의 이에 갈려서 그리스도의 깨끗한 빵이 될 것입니다. 이 맹수라는 도구를 통해서 내가 하느님께 봉헌된 희생 제물이 될 수 있도록 그리스도께 기도하십시오.”(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 순교자의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
 
   순교자들의 글을 읽다 보면 가장 감동적인 것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아무리 신앙심이 강하다지만 죽음을 눈앞에 두고 어쩜 이렇게 담담하고 당당할 수가 있을까요? 김대건 신부님도 희광이 앞에서 목을 내밀면서 “어떻게 하면 내 목을 잘 칠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물었다지요.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우리나라는 서학이라는 학문으로 시작된 천주교가 선교사의 도움 없이 오직 평신도들의 노력으로 전파된 유일무이한 나라지요. 처음에는 남인들 중심의 양반 계급에서 시작되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조상 제사 문제로 박해가 시작되면서 양반들은 잃을 게 많았기 때문에 거의 다 떨어져 나가고 상민들과 천민들이 주류를 이루었지요. 박해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무릅쓰고 신자가 된 이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사색당파로 나라는 어지러웠고 백성들은 도탄에 빠져 있었으며, 양반 상놈의 엄격한 계급 질서 아래서 남녀노소의 차별이 극심했던 시대에 서로를 형제자매로 부르면서 가진 것을 나누는 교회야말로 천국과 같았겠지요.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심판’에서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 라고 하셨고,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 23,11)라고 하셨습니다. 약육강식과 물질만능이 판을 치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자랑스러운 순교 선열들을 본받아 얼마나 차별 없는 세상, 더불어 사는 세상을 위하여 하느님의 밀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요?
 
   “하느님께서 우리 편이신데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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