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이 왜 하느님의 은총인가?
구옥순 베아따
망미성당 · 동시인
budulkoo@hanmail.net
“선생님, 배추에 소금을 왜 뿌려요?” “뻣뻣한 배추는 푸릇푸릇 싱싱하게 자랐지만 뻣뻣한 그대로는 김치가 될 수 없지. 소금을 켜켜이 뿌려 진한 눈물 흘리고 나면 살강살강 아삭아삭 부서지지 않고 포기포기 돌돌 감은 맛있는 김치가 되지.”
인생을 살다 보면 시련이 간간이 온다. 인생의 파도! 넘기 힘든 큰 것도 있고 비교적 수월한 것도 있다. 인간에게 시련 없는 인생은 없다.
가만히 살펴보면 인간이나 배추나 사는 모습은 같다. 잘 자란 배추에게 소금을 치면 살짝 숨이 죽는다. 배추로서는 죽을 맛이다. 싱싱한 배추는 끝없는 눈물을 흘린다. 절인 배추는 맑은 물에 두세 번 헹구어져 소쿠리에 담긴다. 배추는 ‘아! 이제 시련이 끝났구나.’ 생각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심심하고 순진한 배추에 톡톡 쏘는 마늘과 생강, 구수하지만 짭짤한 젓갈, 매운 고춧가루, 눈물 나게 하는 양파를 함께 버무린 김장 소를 골고루 묻힌다. 그것으로 끝나면 얼마나 좋을까? 돌돌 감긴 배추는 김장독에 들어가 한 달 정도 기도하는 마음으로 견디어야 한다. 이런 과정 없는 배추는 배춧국이나 배추전, 배추쌈 정도밖에 되지 못한다. 이 이야기에 화 잘 내는 우리 반 아이는 말한다. “선생님, 제가 좀 참아야겠네요.”
43년 교직에서 몸담고 퇴직한 입장에서 요즈음 학교가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을 보면 마음이 무너진다. 아직 사회생활이 서툰 아이들이 서로 부딪쳐서 빚어내는 학교폭력, 학부모들의 과잉 민원과 아동학대 신고, 내 아이만 생각하는 학부모의 의식! 그런 아이가 사회에 나가서 조그마한 시련이라도 이겨낼 수 있을까?
인생을 살아보니 시련은 인간의 품을 넓게 만들고 긍정적인 생각과 인내를 키워준다.
‘하느님께서는 선물을 주실 때 늘 고통이라는 보자기에 싸서 주신다.’고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대부분 보자기를 풀다가 그만둔다. 왜냐하면 고통받기 싫기 때문이다. 조금만 참고 견디면 보자기 속의 선물을 만날 수 있는데 말이다. 시련은 하느님의 은총이다. 하느님은 이겨내지 못할 시련은 주시지 않는다. 그 시련을 잘 이겨낸 자만이 선물을 받을 수 있다.
하느님이 우리 사회에 주시는 시련을 어떻게 해야 잘 이겨낼 수 있을까? 나만을 위한 이기심을 버리고 타인에 대한 배려와 베풂으로 함께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두 손 모아 기도해본다.